한국GM이 2002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2년 내에 철수하기로 한 GM의 5일 결정에 따라 한국GM은 구조조정과 노사갈등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GM 측은 “보다 건강한 구조를 갖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감 감소에 따른 단기적인 충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문이 사실로…결정의 배경은=GM이 한국에서의 생산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어쩌면 철수를 감행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 2~3년전부터 계속 흘러나왔다. 실제로 GM은 지난해 차세대 ‘쉐보레 크루즈’의 생산지에서 한국GM(군산공장)을 배제하기도 했다. 서서히 한국GM의 역할을 축소시켜 나가고 있던 것이다. 외신들은 GM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생산을 강화한다는 기사를 꾸준히 내보내며 주된 이유가 노동비용이라고 해석했다.
GM이 이날 전격적으로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를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소문과 맥을 같이 한다. 결정의 배경이 효율 증대를 위한 세계 전략 재편에 있기 때문이다. 댄 애커슨 GM 회장은 “유럽에서 오펠과 복스홀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며 “이번 조치로 쉐보레를 신 시장에서 키우기 위한 투자를 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지난해 완성차 80만대와 반조립제품(CKD) 187만대 등 총 207만대를 생산했다. GM의 연간 생산 900만대 중 200만대 이상을 한국GM이 직간접 생산한 셈이다. 그러나 GM의 이번 결정에 따라 한국GM의 역할과 위상은 크게 약해지게 된다.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브랜드 차량은 대부분 한국GM이 만들고 있어 이번 결정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GM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GM이 만든 완성차 80만대 중 18만6,000대가 유럽으로 수출됐다.
◇한국GM의 앞날은=한국GM 측은 이날 “유럽에 수출을 못하게 된 대신 러시아, 독립국가연합(CIS) 및 기타 신흥시장에 대한 수출을 확대해 만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결국 모 회사인 GM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앞날을 예단하긴 어렵다.
보다 솔직한 대답은 “단기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한국GM 관계자의 말이다. 현재 한국GM은 부평, 창원, 군산 등 3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 수출 차는 주로 군산 공장이 만든다. 군산 공장은 이번 결정에 따라 벼랑끝에 서게 되며 노사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GM 측은 한국에 대한 GM의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댄 애커슨 회장은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주면 90억달러를 한국에 추가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한국GM 관계자는 “GM은 최근 수년간 한해 1조원 이상을 한국에 투자했고 앞으로도 통상임금 이슈와는 별개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며 “주요 생산기지이자 소형차와 경차 개발기지로서의 역할도 계속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한국이 자동차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 데 따른 자연스러운 외국 기업 이탈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대·기아차도 해외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지 않느냐”면서 “GM은 앞으로도 한국보다 유리한 생산기지의 유혹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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