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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증권사 실무자들에게 우리나라 증시의 건전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이 물음에 대부분은 "한국 증시가 취약 체질이라는 고질병에 걸렸다"고 답했다. 그리고 발병 원인으로 '외국인'을 지목했다. 외국인, 엄격히 얘기하면 외국 투기자본이 활개치는 것만 해결하면 국내 자본시장이 건전해질 것이라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한국 증시의 취약함이 단지 외국인 때문만일까. 과연 외국인만 해결하면 시장이 건전하게 바뀔까.
최근 한국거래소의 조사를 보면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28~32%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해당 기간 동안 보유 주식수도 46억주에서 53억주 사이로 큰 변화가 없었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 매매 패턴을 자주 바꾸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시총 비중은 최고 21%에서 최저 12%까지 움직였다. 시총 비중의 변동 폭이 9%포인트나 돼 외국인의 두 배에 달했다. 보유 주식수의 변동 폭은 더욱 커서 2009년에는 48억주를 갖고 있었지만 2008년에는 불과 20억주만을 손에 쥐고 있었을 뿐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주식을 많이 샀지만 시장이 나빠지면 무조건 팔고 봤다는 뜻이다. 결국 국내 증시의 변동성은 외국인보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변동성이 왜 이렇게 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기 투자는 관심이 없고 단기 투자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의 존재 이유인 '증시 버팀목'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 증시의 주식 회전율이 15.6%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는 최근의 한 조사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기관투자가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가 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증권가 일각에서 장기 투자 기관에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판단이다. 기관이 이를 통해 장기 투자의 기반을 닦는다면 한국 증시는 외국인의 놀이터가 아닌 우리의 따뜻한 안방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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