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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남해 노도의 김만중 유허

황원갑 <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이번주 말은 광복절 연휴까지 겹쳐 올여름 피서여행이 절정에 이를 듯하다. 해마다 여름휴가철이면 경남 남해 상주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많다. 즐거운 물놀이도 좋지만 오가는 길에 잠깐 시간을 내 가까운 노도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남해군 상주면 벽련리 노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요, 학자요, 정치가였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위대한 문학정신과 지극한 효심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문학정신·효심 서린 역사현장
서포는 효성이 지극한 만고의 효자였다. 국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걸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도 서포가 옛이야기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귀양살이할 때에 지은 것이다. 예나 이제나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돈을 벌었노라 행세하는 사람은 많지만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부간에 화목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서포는 충효와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진정한 인격자였다. 남해 노도는 서포가 3년간 극진한 사모(思母)의 정으로 몸부림치고 장희빈에게 빠져 중전 민씨를 내쫓은 숙종의 어두운 처사를 풍간(諷諫)하면서 어지러운 나라를 걱정하는 ‘사씨남정기’를 쓰던 마지막 유배지였다.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 인근을 피란 중인 배 위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난이 끝난 뒤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 해평 윤씨(海平尹氏)는 만기와 만중 형제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몸소 길쌈하고 수놓아 부모를 봉양하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다. 두 형제는 어머니의 훈육 덕분에 스승 없이도 열심히 공부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하지만 서포의 행복했던 날들은 빨리 지나가버렸다. 처음 10년간은 비교적 순탄하던 벼슬길이 가시밭길로 변해 대제학까지 지냈건만 인생 후반부가 세차례의 유배로 점철됐던 것이다. ’구운몽’은 서포가 선천에서 귀양살이하며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작품이지만 또한 자신이 응시ㆍ관조ㆍ통찰한 인생관을 담은 깨달음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삶이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부질없는 것, 벼슬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똑같이 유한한 것, 한바탕 백일몽처럼 어지러운 것. 서포가 유학으로 입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적 인생관으로 팔선녀의 꿈을 그린 까닭이 거기에 있었으리라. 숙종 14년에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 사면령이 내려 서포의 귀양도 풀렸다. 하지만 그 이듬해 일어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세상은 또다시 뒤집혔다. 서인은 완전히 몰락하고 서포는 간신히 목숨이 붙어 머나먼 절해고도 남해 노도로 세번째요, 마지막인 귀양길에 올랐다. 그해 12월25일에 어머니가 온통 가시밭길 같았던 73년의 세상살이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 소식을 서포는 이듬해 초에야 들을 수 있었다. 부음을 들은 서포의 가슴은 미어질 듯했을 것이다. 머나먼 남쪽 바다 한가운데 갇힌 몸으로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불효자가 됐으니 그의 애통함을 어디에 비기랴. 나이 지긋해서도 노모를 즐겁게 해드리려고 해마다 생신날이면 두 형제가 색동옷 입고 언니가 피리불면 아우는 춤추던 그렇게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 우리 어머니 차가운 지하에 말 없이 누워계시겠구나. 서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붓을 들어 어머니의 행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태 뒤인 숙종 18년(1692) 4월의 끝날 서포는 애통한 가슴에 병까지 골수에 스며 유한(有恨)했던 이승살이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부모 생전에 즐겁게 해 드려야
서포 김만중은 그렇게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삶을 끝맺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하고 중첩한 일생이었다. 세상이 갈수록 어지러워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버젓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방영되는 기막힌 세상이 됐다. 패륜시대ㆍ말법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이 난세에 만고효자 김만중의 지극한 효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부귀영화 공리공명을 자랑 말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 한번이라도 더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리라. 남해에 가면 노도에 서린 김만중의 문학정신과 효심을 한번쯤 되새겨보기를 권한다. 그 또한 뜻 깊은 여정(旅情)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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