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 0.08g, 우유 0.4㎖, 택시로 1.42m 가기…. 우스울지 모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1원의 가치다. 다만 현실에서 이런 거래는 없다. 은행에 가도 마트에 내밀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래서 1원은 '0'원이다. 얼마 지나면 수집가를 찾아야 볼 수 있는 희귀동전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아이들이 1원짜리 동전에 무궁화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가치가 없는 1원. 하지만 그 무가치 덕에 오히려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하는 호강도 누린다. 1978년 리 아이어코카는 파산직전의 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며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회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구조조정에 속도를 붙이기 위한 승부수. 이후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 포드의 빌 포드 등 쟁쟁한 CEO들이 '1달러 클럽(The One-Dollar Club)'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취임하며 '월급 1원'을 선언해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CEO들이 1원만 받고 자선봉사를 한다고 믿는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1997년부터 사망 때까지 애플에서 1달러씩만 받았던 잡스는 사망 후 약 100억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오러클의 창립자인 로런스 엘리슨 CEO도 주식을 포함 40조원이 훨씬 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김 전 행장도 월급 대신 받은 40만주의 스톡옵션으로 8년 뒤 110억원의 시세차익을 누렸다. 시쳇말로 '껌 값'도 안 되는 봉급을 받느니 회사를 성장시켜 명예도 누리고 실리도 챙기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법이 작용했음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회장이 금호산업 CEO로 돌아왔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연봉 1원만 받겠다'는 출사표와 함께다.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보유 지분을 내놓겠다는 배수진도 쳤다. 성공하면 명예를 회복하겠지만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말 그대로 '모 아니면 도'의 승부수.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1원을 본 적이 있던가. 박 회장의 도전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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