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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워지면서 사무실이나 가정에서의 에어컨 사용이 급속히 늘고 있다. 날씨가 덥다고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곳만 찾다 보면 여름 감기 증상과 비슷한 냉방병에 쉽게 노출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냉방병 예방을 위해서는 외부와 온도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도록 적절히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실내 공기를 자주 환기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냉방병은 특정 질병을 의미하는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여름 감기와 함께 여름철 발생할 수 있는 질환으로 흔히 사용되는 용어다.
냉방병 혹은 냉방증후군은 냉방을 하는 일반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실내외 온도차가 섭씨 5~8도 이상 지속되는 상태로 장시간 머물 경우 흔히 나타난다. 섭씨 25~42도의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레지오넬라균 등 주로 미생물에 의해 오염된 공기가 실내를 순환하면서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두통과 피로, 무력감 및 집중력 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냉방병은 온도차에 의한 것과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것 등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실내외 온도차가 심해 발생하는 냉방병은 신체가 극심한 온도차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증상을 말한다.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냉방병은 일명 '재향군인병'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균이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면서 폐렴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만성적으로 심폐기능이 저하돼 있거나 관절염 환자, 노약자, 당뇨병 환자 등이 대표적으로 냉방병 발생에 취약한 고위험군이다.
에어컨 등 계속되는 냉방기구의 사용으로 실내외 온도차가 섭씨 5~8도 이상 지속되는 환경에 오랫동안 머물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자율신경계 기능의 이상으로 장 운동 조절 장애가 오면 변비나 설사·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뇌의 혈류량 감소로 두통, 수면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혈압,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 호르몬 순환 등에도 영향을 주며 근육수축에 불균형이 나타나 요통이 생기고 여성의 경우 호르몬 이상으로 월경불순이 오기도 한다.
윤호주 한양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과도한 냉방으로 체온이 내려가면 말초혈관이 수축돼 얼굴과 손·발등이 붓게 되며 체내에서는 열을 보충하기 위해 계속 열을 생산하기 때문에 피로가 쉽게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냉방병의 원인이 되는 주요 세균인 레지오넬라균은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호텔에서 열린 재향군인(레지오네르) 모임에서 이 세균 때문에 220명의 환자가 발생해 34명이 사망한 뒤 이름이 붙여졌다. 이 균은 섭씨25~42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좋아하며 자연환경 이외에 온도가 알맞은 인공 급수시설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수조·공기·물방울 등에 섞여 있는 미세한 균이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감염되며 일반적으로 면역력 저하가 없는 건강한 사람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지만 만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노약자 등은 고열·오한 등 폐렴 증상을 보인다. 다만 레지오넬라균은 대형 건물 냉각탑의 냉각수에서 번식해 에어컨을 통해 번지기 때문에 가정용 에어컨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냉방병의 증상은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냉방기구 사용을 중단하면 수일 내에 좋아진다. 인체는 18도 이하의 온도에서 쾌감을 느끼나 에어컨 온도 설정을 너무 낮게 할 경우 냉방병 발생의 원인이 된다. 냉방병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실내외의 온도 차이는 5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가급적 실내 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고 에어컨의 찬바람이 신체에 직접 닿지 않도록 방향을 위쪽으로 조절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날씨가 무더울 때는 25도 이상으로 에어컨 온도를 맞춰놓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온도를 조금은 낮추되 적어도 2시간에 한 번씩은 5분 이상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
에어컨 가동 상태에서는 절대 금연을 해야 하고 에어컨의 에어필터를 1~2주에 한 번씩 청소해주는 것이 좋다. 또한 여름철에는 습도에 유의해야 하는데 여름철 습도는 60~70% 정도이지만 냉방장치를 한 시간 이상 가동하면 실내 수분이 응결돼 습도가 30~40%로 내려가게 된다. 이로 인해 호흡기 점막이 건조해지면 인후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가습기를 틀거나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얇은 옷이나 짧은 옷으로 신체가 찬바람에 노출될 기회가 더 많은 만큼 냉방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카디건ㆍ무릎담요 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운전 중에도 차의 에어컨 바람이 사람이 있는 쪽으로 직접 나오지 않도록 하고 틈틈이 외부 공기를 유입시키는 것이 좋다. 또한 평소 흡연을 자제하고 충분한 수면과 적절한 운동으로 신체 면역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냉방병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냉방병과 함께 여름에 직장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여름 감기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아침저녁 일교차가 크고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
만약 에어컨을 가동하는 곳에서 장기간 생활하거나 자주 드나들면 콧물과 기침·두통을 동반한 감기에 걸릴 위험이 높다. 낮 기온이 더워지면서 일교차뿐만 아니라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심해지면서 신체 적응력과 면역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 감기와 증상이 유사한 다른 질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약 감기 증세와 함께 설사, 체중 감소가 동반된다면 바이러스성 장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 바이러스성 장염은 탈수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입술이 바짝 마를 수 있고 근육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 콧물이 계속 나는 경우 알레르기성 비염일 수 있으며 목이 붓고 기침이 지속된다면 후두염, 기침이 심하다가 가슴 통증이나 객혈, 전신 피로, 체중 감소 등이 동반되면 결핵을 의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아이들은 뇌수막염이 감기 증상과 비슷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처음에는 감기처럼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가 이후 토하거나 목이 뻣뻣해지고 심한 경우 의식이 혼탁해지기도 한다. 부모는 자녀의 몸에서 열이 나고 두통이 생기면 단순 감기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 쉽지만 두통·발열·구토 등의 증상이 심해진다면 뇌수막염을 의심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한 60대 이상 노인들은 여름 감기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단순한 감기 증상으로 시작해 폐렴으로 발전, 증세가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감기처럼 심한 온도차 때문에 기침이 심하고 가래가 끓는 경우에는 더 주의가 필요하다. 폐렴은 폐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면역력이 약한 노인, 만성 질환자와 같은 고위험군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노인에서는 호흡기 증상보다는 미열과 함께 전신 쇠약감이나 식욕 저하 등 애매모호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어 단순 감기와 폐렴을 구분하기 어렵다.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감기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호흡이 어려운 경우, 감기와 증상이 유사하더라도 가슴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 이유 없이 입맛이 없어지고 전신 쇠약감이 심해지면 병원을 찾아 조기에 적절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같은 여름 감기 등을 예방하려면 외출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겉옷을 준비하고 외출 후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또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과일 등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 걷기와 산책 등 가벼운 운동 역시 신체 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면역력을 높여 여름 감기를 예방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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