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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급과 거래 등 주택시장 전반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지난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주택 재고량의 절대 부족과 이에 따른 집값 급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주택건설이 당면과제였기 때문이다. 5년 후인 1977년에는 정부 재정이나 기금이 투입되는 공공주택과 민간이 짓는 민영주택의 공급 체계를 담은 하위법령인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만들어지면서 주택청약제도의 근간이 마련됐다.
특히 1970년대 말 전국 땅값이 평균 49%, 서울에서만 136% 상승(1978년 기준)하는 등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고 198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도 집값 급등이 재연되면서 정부의 주택공급제도 방향은 투기 방지를 위한 규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재당첨 금지, 청약가점제 등 청약제도의 세부 규제가 하나씩 추가됐지만 무주택자 여부와 청약가입 기간 등을 따져 청약 우선권을 부여하는 기본 골격은 4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현재 청약통장은 공공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는 청약저축과 전용 85㎡ 이하 중소형 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한 청약부금, 예치금액에 따라 모든 민영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청약예금, 모든 공공·민영주택 청약이 가능한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구분된다.
◇돈 있어도 집 안 사는데 제도는 40년 전 그대로=최근 수도권 분양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저렴한 가격에도 미분양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남권 등 인기지역이 아니면 2년 이상 가입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1순위 청약에서 마감되는 단지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업계는 가장 큰 이유를 주택에 대한 수요자들의 인식 변화로 꼽고 있다. 높게는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70~80%에 달해 추가 자금 부담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을 반드시 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 일대에 공급되는 아파트 중 상당수는 시세보다 저렴해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하지만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과거와 같은 집값 급등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택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 공급 방식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일이 인허가는 물론 최종적인 분양 과정까지 개입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30가구 이상의 주택은 사업계획 승인은 물론 분양가격까지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분양 역시 가격에 관계없이 무조건 모집공고를 낸 후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라 1~3순위로 나눠 신청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한 채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급주택까지 무주택자에게 청약 우선권을 주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영주택시장 정부 개입은 시대착오적=전문가들은 우리 주택시장이 단순 침체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주택청약제도 역시 공공과 민간 부문을 분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무주택 서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주택의 경우 기존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민간주택시장은 철저하게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민영주택은 청약제도를 폐지해 시장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주택의 다양성과 시장 상황에 대한 탄력적 대응이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와 주택시장 상황이 비슷한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에도 민간이 아닌 공공주택에만 규제가 한정돼 있다. 싱가포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HDB(Housing Development Board)의 공공주택 공급 기준에 대해서만 세부적인 기준을 두고 있다. 콘도(민간아파트)와 방갈로(단독주택) 등은 별다른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홍콩 역시 홍콩주택청(HKHA)에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배분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기존 청약통장 가입자들의 반발과 국민주택기금 재원 부족 등의 문제 때문에 단계적으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4월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는 1,661만명에 이른다. 국민주택기금 52조6,803억원(2013년 말 기준) 중 27.9%인 14조7,235억원은 청약통장을 통해 조성된 금액이다.
이와 관련,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민간과 공공의 청약을 구분해서 유지하되 민간 부문은 청약통장 유무와 종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청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정 가격 이상의 민영주택은 아예 청약제도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일반 실수요자와 거리가 있는 고가주택까지 청약제도 아래 줄 세우기 할 필요는 없다"며 "(가격 기준은) 지역 특정에 맞게 다르게 둘 수도 있고 고가주택 기준인 공시가격 9억원으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무주택자 위한 공공주택 혜택은 넓혀야=민간주택과 달리 공공주택의 경우 청약통장이 실질적인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재원이 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위해 '공공주택 청약저축'의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시켜 가입자들에게 자금 마련과 주택 청약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또 단순한 분양 우선권을 넘어 금융지원과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실장은 "해외의 주택공급 지원책은 금융지원까지 함께 수반되지만 우리나라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지원 따로 청약 지원 따로 이뤄지고 있다"며 "(무주택자 등) 특정 계층에 대한 지원은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는 2035년에는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4%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만큼 신혼부부 외에 미혼뿐만이 아니라 독거노인 등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세부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고령자들이 공공주택을 청약할 경우 대기 기간을 단축시켜주거나 청약 기준도 완화시켜주는 대안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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