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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9월 6일] 시1

'몽해항로' 중에서(민음사 펴냄)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이니 피와 살로 살고 남은 시간은 몸에 저축한다 허나 몸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니 그 집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는 마라. 낙타를 만나거든 낙타가 되고 모래바람 이는 사막이 되라. 순례자를 만나거든 옛길이 되고 오래된 성전(聖殿)이 되라. 비를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천둥으로 울고 번개로 화답하라. 강을 만나거든 바람으로 건너고 산을 만나거든 묵은 소나무 곁 바위로 살라. 고아를 만나면 푼돈을 쥐어 주지 말고 그의 작은 주먹이라도 되라. 거지를 만나면 불우를 연민하지 말고 그의 옷 솔기에 붙은 이라도 되라. 부처를 만나면 보리수가 되고 보리수 아래 푸른 그늘이 되어 누워라. 나한을 만나거든 나한이 되고 나한이 싫으면 주린 뱀이 되라. 개구리를 만나거든 뱀으로 살지 말고 차라리 개똥이 뒹구는 풀밭이 되라. 혹한이거든 얼음으로 꽁꽁 얼어 있다가 얼음이 풀리면 시냇물로 흘러라. 죽음을 만나거든 꽃으로 피어나지 말고 여문 씨앗으로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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