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폐쇄) 사태가 5일(현지시간)로 닷새째를 맞은 가운데 미 정치권 내에서 "정부의 문은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강개혁법안,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대치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오는 17일께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으면서 정치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특히 공화당의 극우 보수세력인 티파티 내에서도 "일단 새해 예산안은 통과시키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미 의회와 백악관이 합의점을 도출할지 주목된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블레이크 패런솔드(텍사스), 더크 램본(콜로라도), 데니스 로스(플로리다) 등 일부 티파티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셧다운을 하루빨리 끝내고 정부부채 한도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오바마케어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다 국민 여론도 공화당에 부정적인 만큼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자는 것이다.
패런솔드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케어에서 1인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예산안을 통과시킨 뒤) 세제나 이민개혁법ㆍ메디케어 등 다른 사회보장 프로그램에서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 의원도 "차라리 오바마케어가 시행되도록 놓아두고 그게 얼마나 나쁜지 국민들이 보도록 하자"며 "이는 201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환상적인 선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 여론이 악화되면서 여야 지도부 내에서도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수전 콜린스(공화ㆍ메인), 존 매케인(공화ㆍ애리조나), 척 슈머(민주ㆍ뉴욕) 등 양당 상원 중진의원들은 휴일에도 잇따라 비공식 접촉을 하며 구체적인 타협안을 논의했다. 롭 포트먼(공화ㆍ오하이오) 상원의원의 경우 정부지출 일부삭감, 세제개혁 등을 주장하는 대신 1년간 현수준에서 정부지출을 유지하는 잠정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부채상한도 일부 증액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셧다운 사태의 책임론이 커진 공화당 주도로 연방정부의 기능도 일부 정상화하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 4일 밤 극빈자와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한 추가영양지원 프로그램(SNAP) 예산 65억달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는 그동안 사회보장예산 확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티파티 주도로 이뤄져 주목된다.
5일에는 미 하원이 셧다운으로 일시 해고된 공무원들이 업무에 복귀했을 때 보수를 소급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 국방부가 이날 무급휴가를 떠난 민간인 직원 약 40만명에게 이번주 업무복귀 명령을 내린 것도 공화당의 요구 때문이다. 또 공화당은 예산안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주 중 국경경비ㆍ핵안전ㆍ국립공원 등에 예산을 배정하는 법안을 상정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오바마케어ㆍ세제개편ㆍ정부지출 등을 둘러싼 양당 간의 이념적 차이가 모호해지고 있다"며 "공화당 지도자들이 셧다운 해법에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는 가운데 점진적인 정부기능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물밑협상 움직임에도 미 의회와 백악관은 한동안 치킨게임을 거듭한 뒤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눈앞에 닥치는 이달 중순께나 마지 못해 타협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케어를 둘러싸고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존 플레밍(루이지애나) 공화당 하원의원은 "오바마케어를 막기 위해 정부부채 상향조정과 연계할 것"이라며 일전불퇴의 의지를 과시했다.
또 미 정치권이 타협안을 도출하더라도 정부부채 한도 상향, 오바마케어 등 핵심 쟁점의 해결을 뒤로 미루는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정부를 일시적으로 연 뒤 정부부채 한도를 임시로 올리는 미봉책이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예산안이나 증세 등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 프로그램 축소와 내년 말까지 정부부채 한도 상향조정을 맞바꾸는 대타협 ▦내년 중간선거까지 부채한도를 상향 조정하는 대신 예산지출을 축소하는 미니 타협 ▦한쪽의 일방적 항복을 강요하는 대치정국 지속 등은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