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시대의 일이다. 어느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우연히 한 집의 아궁이를 봤다. 굴뚝이 너무 곧고 바로 옆에 장작더미가 쌓여 있어 위험해 보였다. 주인에게 굴뚝을 고치고 나무를 옮겨놓으라 조언했다. 하지만 주인은 귓등으로 흘렸다. 며칠 후 그 집에서 불이 나 마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그슬리며 가까스로 불을 껐다. 주인은 고마움의 표시로 마을 잔치를 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주인에게 다가와 "나그네의 말을 따랐다면 불도 나지 않고 술과 고깃값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정작 그 공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 나오는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유래다.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장작을 옮겨 놓는다는 뜻이다. 이는 불을 막은 사람의 공은 모르고 정작 불 끈 사람만 알아준다는 세태를 꼬집은 말로 사후 대응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우쳐주는 고사성어다.
제아무리 훌륭한 소방관이나 구조대원이라도 정작 사고를 막는 데 힘쓴 사람만 못한 법이다. 최근 제주 추자도 해상에서 21명이 탄 낚싯배가 뒤집혀 1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일부에서는 '제2의 세월호'라고까지 빗대 말하며 해경의 대응을 비난했다. 이런 탓에 해경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해양경찰에서 해양경비로 강등된 후 맞은 첫 생일(9월10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낚싯배 사고에서 반복된 해경의 초기 대응의 혼선과 각종 첨단 장비의 허술함이나 '사고 1시간 내 구조' 등 허망해진 약속을 보면 해경으로서는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마냥 해경 탓만 할 수도 없다. 좋지 않은 날씨에 무리하게 운항을 하고 승선인원을 허위로 작성한데다 사고 초기 해경에 '배가 잘 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의 잘못된 처신도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실제로 요즘 해양 레저가 활성화하면서 소규모 어선이나 선박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인원을 꼼꼼히 점검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우리 안전문화의 현실이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특정인을 싸잡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공공의 적'을 만들어 무작정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면 정작 나와 주변에 숨어 있는 적폐는 놓칠 수밖에 없다. 장비를 갖추고 차가운 바다에 뛰어드는 해경 특공대원보다 부둣가에서 묵묵히 승선인원을 제대로 기입하고 때에 따라 운항을 자제할 줄 아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공로가 더 크다. 안전을 진짜 위협하는 '공공의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과 주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회부 한영일 차장 han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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