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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풍에 친화력·뚝심 갖춰… 당 부패 척결·분배개혁 예고

[중국 시진핑시대]<br>■ 중국 10년 이끌 시진핑 총서기는<br>유복한 태자당 출신 불구 25년간 외딴 지방근무 자처<br>조화·균형의 과학발전 강조 민간기업 활성화 정책 펼듯


중국의 향후 10년을 이끌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는 아버지가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 국가 부총리로 은숟갈을 물고 태어난 유복한 태자당 출신이다. 하지만 유년기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혹독한 농촌 하방생활을 겪었고 젊은 시절에는 하층 중국민의 삶을 이해하겠다며 외딴 지방 지도자의 외길을 수십년 걸어온 뚝심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생역정 탓에 시진핑이 각종 사회ㆍ정치적인 난제를 어떻게 돌파해나갈지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개혁ㆍ개방 이후 지난 30년간의 고속성장 시대의 후유증이 증폭되면서 개혁작업이 시급한 상황이다. 수출에서 내수로의 경제성장 질적 전환, 이를 위한 소득분배 개혁 등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공평과 정의'가 새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칭화대를 졸업한 시진핑은 지난 1979년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모든 정치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자리인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을 맡고 있던 겅뱌오 국방부장의 비서로 들어간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29세의 젊은 시진핑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외딴 지방 근무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외교 전문은 시진핑의 고향 친구를 인용해 그가 이때부터 혁명 원로인 아버지 등의 인맥을 통해서는 진정한 권력기반을 잡을 수 없다고 보고 지방에서 지도자 수업을 쌓는 길을 택했다고 전했다. 당장은 힘들지만 도광양회(힘을 기를 때까지 음지에서 역량을 쌓음)의 마음으로 고행길을 택한 것이다.

이후 2007년 당 중앙의 인정을 받아 상하이시 서기로 전격 발탁될 때까지 25년간 허베이성 정딩현의 부서기를 시작으로 푸젠성ㆍ저장성에서 지방 지도자 길을 걸었다. 시진핑은 근년 들어 공산당의 부패 사건이 잇따르자 당의 '순결성'을 유독 강조했다. 그는 특히 올 3월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부패 사건 이후 당 기관지 기고 및 연설을 통해 "당의 순결성을 사상ㆍ정치ㆍ조직ㆍ기풍 방면에서 실현해야 하다"며 당의 부패를 일소해 중국민에 대한 지지와 통치 기반을 쌓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 18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당의 '순결성'이라는 표현이 삽입됐는데 이는 시 총서기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앞으로 대대적인 당 내부 부패척결 작업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시 총서기는 또 공산당 간부를 교육하는 중앙당교 교장으로서 후진타오 주석이 제시한 '과학발전관' 이념을 주도적으로 설파해왔다. 과학발전관이란 경제성장을 계속하되 경제뿐 아니라 사회ㆍ문화ㆍ정치ㆍ환경 등 다방면에서 조화롭고 균형적인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념이다. 시진핑이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한 18차 당대회 보고안이 그의 향후 국정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각 부문의 조화와 균형ㆍ분배를 강조하는 정책들이 내년부터 속속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은 보수 원로들의 반발 등으로 과감한 정치개혁에 나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 부문에서는 소득분배 개혁, 국영기업의 독점 철폐를 통한 민간기업의 활성화 등의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적극적 개혁조치에 대한 기대는 그의 지방 지도자 경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저장성 서기로 부임한 2003년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액은 56억달러였지만 2007년 이임할 때는 316억달러로 5배 이상 늘었다. 이는 그가 부임 이후부터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중화학공업을 내륙 지역으로 옮기는 대신 환경친화적이고 혁신적인 민간기업 유치에 공을 쌓은 결과였다. 1980년대 말 푸젠성 닝더시 서기로 있을 때는 지역 간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주요 도로 주변에 있던 지방 권력자들의 조상 무덤을 외곽으로 철수시키고 환경친화적 도시 육성에 나서는 등 특권을 타파하고 일찌감치 환경 개념을 도입하는 선구자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중국 전문가인 청리 박사는 "저장성에서의 시진핑의 업적은 특히 민간기업을 활성화하는 부문에서 두드러진다"며 "이는 그가 열린 마음의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07년 상하이방의 핵심 세력인 천량위 당시 상하이시 서기의 부패 낙마 사건은 시진핑에게 중국 황제로 등극하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줬다. 천 전 서기의 낙마로 공석이 된 상하이시 서기 자리는 후 주석의 공청단파와 장쩌민 전 주석의 상하이방파가 각자의 계파 인물을 심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이때 덕망과 능력이 있던 시진핑이 제3의 대안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는 2007년 상하이시 서기로 부임하자마자 천 전 서기 낙마의 발단이 된 사회보장기금 비리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으면서도 정파 싸움에 휘둘리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 통합ㆍ조정능력을 발휘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정치개혁 부진, 당 부패 악화 등 개혁을 정체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후 주석과 달리 시진핑은 은근한 뚝심으로 각 정파 간 이해조정을 통해 나름대로 개혁을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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