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자진사퇴 이유로 든 것은 '한국 정치에 대한 환멸'이다.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정치실종 사태를 지켜보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접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중국적 논란' 등 제기된 여러 의혹과 관련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거나 검증에 부담감을 느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등 정부 여당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가운데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다"는 분위기다. 반면 야당은 "김 내정자 사퇴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원칙한 부실인사가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김 내정자의 이날 자진사퇴 선언은 전격적이었다. 그가 국회 정론관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내정자직 사퇴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김 내정자는 "국가 운명과 국민 미래가 걸려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정안이 제출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을 자신의 사퇴 이유로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약 2분여간의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부분 답변하지 않은 채 국회를 떠났다.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내내 김 내정자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린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정치는 실종되고 국정은 초반부터 파행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실망감이 커 보였다.
장관직으로 내정된 후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각종 의혹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는 ▲미 중앙정보부(CIA) 재직 논란 ▲이중국적 의혹 ▲불투명한 재산축적 의혹 등 전방위 검증 공세를 받아왔다.
민주통합당은 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라는 검증의 벽에 부담을 느껴 사퇴한 것을 놓고 야당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성호 수석대변인은 "만약 김 내정자가 미국의 장관 후보자로 나섰다면 철저한 사전검증에 걸려 후보자 반열에 아예 들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고 사퇴한 것은 공직 후보자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김 내정자의 사퇴 의사를 듣고 적극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청와대 인사들은 대부분 관련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다른 사익이 있어 장관을 맡으려 했던 것도 아니고 인재를 이런 식으로 다시 내보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런 인물은 다시 얻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의원총회 자리에서 "국민ㆍ정치권이 함께 극복하는 데 의미가 있지 어려움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김 내정자는 '조국을 위한 뜻을 접겠다'고 한 말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내정자의 자진 사퇴로 후임 미래부 장관 임명은 4월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래부는 '근혜 노믹스'인 창조경제를 책임질 핵심 부처여서 박근혜 정부의 정상적 국정 운영까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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