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9월26일, 미국과 영국ㆍ프랑스가 통화협정을 맺었다. 골자는 환율안정. 특정 통화의 가치가 떨어질 경우 환율시장 개입에 나서 통화를 사들여 하락을 방지하되 24시간이 지난 뒤에는 해당 국가에 매입한 외환과 금과의 교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중앙은행이 설립한 안정기금 간의 약속이었으나 이 협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다자 간 국제금융협력으로 손꼽힌다. 국가 간 통화 스와프(Swapㆍ맞교환)의 시효로도 평가되는 협정의 배경은 미국 주가 대폭락(1929년)으로 야기된 세계 대공황. 영국과 미국이 차례로 금본위제도를 포기해 환율 변동폭이 커진 상황에서 각국이 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를 올리거나 환율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보호무역 경쟁이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이 협정을 이끌었다. 특히 사회당과 급진당, 공산당의 좌파 연합정권인 '인민전선' 출범(1936년 6월)과 거액의 재무장 계획 발표 직후 금의 유출로 곤경에 빠졌던 프랑스가 외롭게 고수해온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협정은 안정을 가져왔다. 물가와 임금이 올랐지만 생산이 증가하고 금본위제도 폐지 이후 퇴장됐던 금이 시장에 돌아와 통화로 바뀌었다. 문제는 국제협력이 너무 늦었다는 점. 세계경제의 다른 축인 독일과 이탈리아를 끌어들이는 시기도 놓쳐 결국은 2차대전을 피할 수 없었다. 3국 통화협정은 3년 전에 체결될 수도 있었다. 1933년 열렸던 세계경제회의에서 세 나라가 합의한 통화안정협정이 미국의 막판 변심으로 무산되지 않았다면 세계경제는 보다 빨리 회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은 예전과 다르다. 글로벌 위기를 조기에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협력이 한창이다.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가 보다 많은 결실을 거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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