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유상재 부장판사)는 24일 지난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장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확정판결이 나온 지 39년 만이다.
재심 재판부는 “대법원은 2010년 긴급조치 1호의 근거가 된 유신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ㆍ무효 판단을 내렸다”며 “재판부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장 선생은 격변과 혼돈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에서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에 몸을 바쳐 나라의 근본과 민주적 가치를 세운 큰 어른이자 스승”이라며 “뒤늦게나마 지난날 사법부의 과오를 사죄하고 고인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고 판결 소회를 밝혔다.
장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는 선고를 마치고 취재진을 만나 “피해자 가족으로서 명예가 회복돼 멍에를 지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며 “이번 선고가 얼룩진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가는 대통합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선생 변호인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무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 국가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판은 재심 첫 재판이자 마지막 재판이기도 했다. 검찰은 선고에 앞서 “근거 법조항이 무효”라며 장 선생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장 선생은 박정희 대통령 당시 월간 사상계를 창간하고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그는 1972년 유신 헌법이 발효되자 ‘개헌 100만인 선언’을 하는 등 유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장 선생은 영장도 없이 불법구금을 당했고, 대법원 3심 판결이 나오는 데 6개월이 채 걸리지 않는 속전속결 재판이 이어졌다.
이후 장 선생은 협심증으로 인한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다음해인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원인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암살'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현재 암살의혹 규명국민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의혹 규명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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