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두 번째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서 가장 중요한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인 ‘창조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때마침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 자원외교 정책을 원점에서 재점검하는 시기이기에 더 주목도가 높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창조경제라는 말은 영국의 ‘창조 산업’(Creative industry)이라는 말에서 발원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문화예술, 디지털 콘텐츠, 미디어와 같이 상품을 만드는 개인의 혁신적인 역량이 중요한 경제 시스템인 것입니다. 기업가의 살아 숨 쉬는 아이디어와 설득력이 자본을 움직이고, 실험 정신과 위험 감수가 필요한 신성장동력에 투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대한 비전인 창조 경제 정책은 어떻게 실행되고 있을까요? 일단 정부는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신기술 기반 비즈니스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기술금융’입니다. 기술을 담보로 기업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지적재산권(IP) 금융, 녹색금융 등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술금융은 기술신용보증기금뿐 아니라 시중은행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정부가 주문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만큼 ‘확실하게 밀어주는’ 제도라는 관점도 가능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 기업의 기술 혁신 정도를 평가하는 게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들려 옵니다. 기본적으로 R&D 투자의 효과는 매우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기술, 부품이라 하더라도 산업계에서 가치를 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최근 IT 시장의 붐인 사물인터넷(IoT)만 하더라도 이미 5-6년 전에 시범 기술이 제시되고 많은 전문가들에게 ‘사물통신’, ‘기기 간 통신’이라는 개념으로 제시되었던 트렌드입니다. 그런데 금융사의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유망한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과연 그 기술이 몇 년 뒤에 시장에 반향을 줄 만한가 아닌가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변리사들이나 기술가치평가 전문가들이 중요한 기술 금융, 평가 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고는 하나 이들은 협의의 ‘권리 분석’을 하던 사람들이지, 기술의 장래성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적 대응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모뉴엘 사태까지 빚어진 이 마당에, 기술을 담보로 대출받는 기업들에게 보증서를 발급하는 과정, 그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차 등이 온당하냐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편 창조경제 정책은 다른 차원으로도 실행되고 있습니다. 각 대기업 별로 투자를 권하여 대구, 전북, 충남 등지에 창조경제파크를 지었습니다. 삼성, SK, 효성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이 과제에 참여하여 정부의 비전에 걸맞은 지역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각지에 생산기술연구소와 공장을 부설해 놓았고, 본래적 생리로 인해 창의적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또 벤처에 직접 투자하거나 기술력이 우수한 협력업체와의 교류를 통해 계속해서 트렌드를 앞서 가려는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창조경제’라는 비전을 지지하기 위해 유형의 산출물을 내놓으라고 주문하게 될 경우, 기업은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수지타산이 안 맞더라도 요청에 응하는 시늉은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저런 근본적 한계로 인해 ‘창조경제’도 무엇을 위한 창조냐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혁신과 창의성이 살아 숨 쉬는 정책으로 보이지만, 과거 이명박 정부의 신성장동력 개발 정책, 녹색금융정책, 노무현 정부의 IT 839 정책 등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논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양한 이름 붙이기와 전문가들의 해석으로 차이점을 보여주려고는 하지만 국민들과 각계의 공감대를 사지 못하고 있다면, 이 정책의 전략적 위치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창조경제의 원 의미를 제공해 주었던 ‘창조산업’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영화나 콘텐츠 산업에서의 성과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큰 인기입니다. 우주 공간을 재현하는 시각화 기술,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을 위해 동원된 전문적 물리학 지식, 훌륭한 연기력을 통해 공감과 감동을 자아내는 배우들. 이것이야말로 고도의 창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고, 다양한 분야의 요소를 결합할 수 있는 융합적 지성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똑똑한 콘텐츠 개발자 하나가 수 백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페이스북, 카카오톡이 되고 일상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플랫폼이 됩니다. 정책 기획자 입장에서는 당장의 매출 얼마, 고용 창출 몇 명에 주목해야겠지만 사실상 제일 큰 성과는 국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창조 경제 정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가 일반인들의 일상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끔 소프트한 접근을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시해야 할 것은 박근혜 대통령도 강조했던 인문학적 상상력입니다. 내용 차원의 인문학이 아니라, ‘디자인 사고’ ‘전략적 사고’라는 말처럼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교육 현장이나 연구 기관에서 창조 경제의 인문학적 원류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고, 대통령도 인문학적 아젠다 세팅을 할 수 있는 적극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창조 경제’가 정권을 막론하고 계속 실행할 수 있는 과제임을 천명해야 합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책 프로그램들이 정권이 끝나면 자동 폐기되고 새로운 개념으로, 또는 부처나 분야 이익에 맞게 재편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더 이상 안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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