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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4> 금융사 CEO에게 꼭 필요한 과목 ‘마음공부’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인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신부가 얼마 전 영국 금융인들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했습니다. 금융 중심지인 런던의 더 시티 인근에 ‘뱅커들이 숙식하며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수련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이 시설은 자본주의의 첨병인 금융인이 삶과 죽음, 윤리, 이웃에 대한 배려와 같은 추상적 가치를 함양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는 공간으로 꾸려집니다. 11년간 정유업계에서 일하며 영국계 대형 석유회사의 회계 책임자까지 역임할 정도로 웰비 신부는 재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그는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의 연례회의에 ‘윤리와 금융’ 분야 토론자로 초빙받은 인물 중 한 명으로 유럽발 재정위기, 전세계적 금융위기의 저변에는 끝 간 데를 모르고 단기적 수익성 위주로 금융 상품을 만든 은행가들의 이기적인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마음공부’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론적으로 봐도 웰비 신부의 제안은 일견 타당한 지적입니다. 경영학의 거장인 마이클 젠슨과 윌리엄 메클링 교수는 ‘대리인 이론’을 통해 주주는 모르는 전문적 경영 정보를 가진 경영자가 범할 수 있는 문제 행동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우선 경영자는 기업의 영속성에 관심을 갖는 주주들과 달리 본인의 이득에 더 매달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한 방’을 노리며 고위험 자산이나 상품에 투자하는가 하면, 때때로 대대적인 혁신을 동반하는 사업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당장 자신의 경영 실적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에는 관심을 갖지만, 스스로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들은 꺼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젠슨과 메클링은 경영자의 보수를 재무성과에 연동할 것을 제안합니다. 회사가 잘 살아야 자기도 잘 살게끔 계약을 짜 놓으면 어쩔 수 없이 사명감을 다해 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금융사의 경영자 연봉은 고도의 계산과 측정 모델 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회계학 교수들이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보상 컨설팅’ 모델에 의해 철저하게 합리화되고 평가된 수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 같은 사람들은 미국 상원에 불려 나가 ‘탐욕을 멈추지 못한 이기주의자’로 비판받았습니다. 인센티브 연계는 경영자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는 될 수 있을지언정 모든 대리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죠.

얼마 전 한 금융사 회장의 퇴진 문제를 두고 벌어진 일에서도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무관료 출신인 A씨는 개인정보 유출과 내부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책임을 물은 당국의 조치에 불응했습니다. 그리고 금융위원장과 조직을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두고 금융가 일각에서는 몇 가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우선 재무라인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졌기에 ‘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큰 반감을 가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소문도 있었습니다. 본봉 20억에 업무추진비만 5억이 넘는 회장직을 한 달이라도 더 수행하기 위해 ‘버티기’를 한다는 이야기였죠. 몇몇 사람들은 거대 금융사의 회장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내일의 소득을 염려해야 하는 중노년 남성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인간론적 슬픔을 느낄 만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조직 경영의 사업적, 법적 책임을 맡은 최고경영자가 보일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논쟁 끝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금융사의 회장 선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은 금융사의 회장 임명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 부임하게 될 회장 내정자는 회계학 전공자이자 경영학 박사인데다 개인금융, 재무전략 등 미시적인 상품 판매 분야에도 전문성을 가진 인물로 호평받는 사람입니다. 조직 내부의 언어인 회계와 시장의 언어인 상품과 경제 동향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온화한 성품과 강직함이 조직 내 해묵은 갈등을 중재하게 될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 경영학계에서도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회장 내정자가 그 기풍의 선두주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트레이더들이나 파생 세일즈맨들이 명동성당이나 조계사, 영락교회를 찾아 1년 수련 프로그램에 등록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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