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가 짧을수록 보험료를 깎아주는 마일리지 자동차보험의 출시를 앞두고 손해보험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이달 말로 예정된 출시 시기를 내년으로 늦추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가입자들의 주행거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이 마땅찮아서다. 보험사들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주행거리 계기판을 가입자들이 직접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고지방식은 다른 차량의 계기판을 찍거나 미리 사진을 찍은 뒤 나중에 보낼 경우 진위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또 가입자가 마음만 먹으면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으로 숫자를 바꿀 수 있는 데다 아날로그식 계기판은 아예 주행거리를 조작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재촉하자 상품을 내놓기는 했지만 가입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우물쭈물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뒤집어보면 지금까지 모럴해저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보험사에도 책임이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터진 대형 보험사기 사건을 들여다보면 태백시 인구(5만명)의 0.8%에 해당하는 410명이 수년간 140억원의 보험금을 타내는 동안 보험사들은 도대체 뭘 했는지 의문이 든다. 보상 담당자의 업무가 가중하다는 이유로 목소리 높이는 가입자에게는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보험금을 지급하면서도 힘없는 서민에게는 보험사기 범죄자 취급하면서 약관 등을 각종 핑계로 들이대며 보상금액을 줄이거나 아예 지급을 거부하기도 한다. 보험사들이 지금까지 모럴해저드라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매출 올리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경찰과 공조해 각종 보험사기를 적발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젠 보험사도 강력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험사기로 적발된 설계사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조치도 금융당국이 나서기에 앞서 업계가 먼저 자발적으로 시행했어야 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보험금이 줄줄 새는 누수 현상을 막으면 보험사 자체의 실적개선 외에도 보험료 인상에 따른 가입자들의 원성을 듣지 않아도 된다. 모럴해저드는 단기적인 처방 만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다. 보험사들은 눈앞의 손해율에만 함몰되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모럴해저드를 사회에서 뿌리뽑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보험은 사랑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사랑에 앞서 신뢰가 먼저다. 가입자는 보험사를 믿고 보험사는 가입자를 믿을 수 있는 사회 풍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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