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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통화를 쓰면서 재정정책과 은행 시스템은 국가별로 다른 과도기적 상황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위기가 되풀이될 것입니다."
단일통화인 유로(euro) 탄생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유로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의 발언이다. 그는 3일(현지시간) 전미경제학회(AEA) 연차총회에서 유로존 위기 토론회에 참석하려다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지만 사전 배포한 자료에서 "유로존은 17개 은행 시스템과 17개국이 발행하는 국채라는 두 가지 근본 결함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은행·재정이 통합되지 않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않는 한 유로존은 위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미국식 양적완화 시사 발언에만 주목한 채 일희일비하고 있는 시장과 대비된다. 피터 고베스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그렉시트(Grexit) 충격이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우려됐던 것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EA 총회에서 참석한 세계적인 통화·재정정책 석학들은 바로 눈앞의 폭풍우는 피하더라도 유로존 금융위기 재연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유로존 경제의 디플레이션 국면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교수는 "재정긴축의 충격으로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유로존은 지속되겠지만 성장 측면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재정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단기해법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구조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도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노동시장은 여전히 경직돼 있고 독일의 긴축정책 고수에도 남유럽 국가의 재정적자는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랭클 교수도 "2010년 재정위기 때 과도한 긴축, 불충분한 양적완화라는 정책 실수를 저질렀다"며 "유럽의 시장 혼란이 재연되고 역내 국채 간 스프레드가 다시 급격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긴축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ECB의 통화부양책은 금융 부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유로존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이들 석학은 유로존이 붕괴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예상했다.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유럽 지도자들이 그리스를 단일통화로 묶기 위해 또 한번 타협할 것"이라며 "유로존을 지키는 게 비용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깨는 것은 더 비용이 들고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도 "유로라는 단일통화는 역사적 재앙이지만 쉽게 붕괴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랭클 교수 역시 "독일이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유로존 국가들에 대한 무제한적 구제금융은 반대하고 있다"면서도 "독일이 과거 재정긴축, 구제금융 반대 등 기본원칙만 고집했다면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장기간에 걸쳐 부족하나마 합의점을 지속적으로 도출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들 석학은 유로존 해법으로는 재정규율 강화와 양적완화, 유로화 절하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재정적자 감축, 부가가치세 인하를 통한 소비확대 등이 필요하다"며 "특히 ECB의 유로화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 증가와 성장률 제고가 핵심 방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공동 채권인 유로본드 발행 등을 통한 점진적 재정통합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프랭클 교수는 유로본드를 발행하면 독일 등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고 재정 위기국은 국채를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우량채권(blue bond)와 악성채권(red bond)를 구분하는 한편 각국의 재정정책을 감시하기 위한 독립적 기관을 파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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