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강사 임관혁(29)씨는 14세 때부터 척추에 염증이 생겨 온 몸이 굳어가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난치병을 앓기 시작했다. 22세 때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자살을 하려고 15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지난 2002년과 2004년 두 차례 수술을 받고 '죽느니 한계에 부딪혀보겠다'는 심정으로 지난해 8월 복싱을 시작했다. 처음엔 살을 빼서 척추나 관절에 주는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차츰 복싱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복싱은 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거든요. 맞아도 좋은 건 복싱이 처음입니다." 임씨는 9일부터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생활체육 복싱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평생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병 때문이라도 도전하고 싶다"는 임씨는 "나 자신을 한번 더 넘어서고 싶었다. 언젠가 프로복싱 데뷔전도 치를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번 대회는 기준 체중을 통과한 아마추어 복서 124명이 사흘간 일반부(19∼31세)와 시니어(32∼41세), 베테랑(42∼50세) 라운드로 나뉘어 체급별 경기를 벌인다. 참가자 중에는 서울대 법대생도 소방관도 있다. 서울대 법대 4학년인 이정록(23)씨가 대학 1년생이던 2003년 9월부터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괴로움을 이기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하도 괴로워서 뭔가 극한적인 걸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복싱인데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어서 그만둘 수가 없는 거예요." 두 차례 아마추어복싱대회에 참가한 이씨는 이번에는 프로복서 자격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다. 최연장자는 올해 마흔아홉살인 박성일 속초소방서 소방경과 주정규 우성실업 대표다. 박 소방경은 40대에 들어서며 더욱 힘들어진 소방구조대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 시작한 복싱 경력이 어느새 10년 가까이 이르렀다. 2005년 전국 생활체육 복싱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주 대표는 1년7개월 전부터 복싱을 시작했다. 젊을 때 태권도와 합기도를 했기 때문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지만 정식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 대표는 "골프에도 취미를 붙여봤지만 역시 골프보단 복싱이 훨씬 재밌었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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