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금융공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가 신설된 후 그 필요성이 대두됐으나 공기업 민영화 정책에 역행하고 재정사정도 여의치 않아 유야무야됐던 사안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금지보조금 시비에 휩쓸릴 수 있다는 문제도 걸림돌이 됐다.
선박금융을 활성화하자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1척당 수억달러에 이르는 선박 수주에 금융인프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듯한 전문 금융기관을 설립해 세계적 수준의 조선과 해운산업을 뒷받침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공조직의 신설은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더욱이 유사 기능을 수행하는 국책은행이 한두 곳이 아니어서 업무중복 같은 부작용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국책금융기관의 중복, 유사 기능의 비효율성을 수술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 마당이다. 취약한 금융인프라와 전문인력 부재라는 현실적 장벽도 만만찮다. 조선ㆍ해운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리스크 관리는 더더욱 어렵다.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뒷전에 밀리고 자칫 혈세까지 축낼 우려 또한 상존한다.
재원조달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재정여건을 감안해 국책은행들이 십시일반 출연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 공기업 같은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기금 형태로 두자는 대안 역시 국책은행 자본금 갹출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선박금융공사는 해양수산부가 부활된 것처럼 정치적 셈법의 산물인 측면이 크다. 미리 신설하겠다고 정해두고 끼워 맞추기식 해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설치 후 효율성과 정책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리스크 관리의 문제는 없는지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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