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반발과 최대 180일 걸리는 헌재판결이 걸림돌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의 위헌 청구와 재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이 국회 보이콧을 거듭해 법안과 예산안 처리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위 ‘식물국회’ 양상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국정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여권 내부의 팽배한 위기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여권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부동산 시장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46개 법안의 처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야당이 상당 부분 반대해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새해 예산안도 지난 10월2일 국회에 제출됐으나 심의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해야 하는 올해 예산의 결산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계획대로 선진화법에 대한 수술작업이 추진되더라도 선진화법은 내년 하반기에나 개정될 수 있어 올 정기국회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선진화법의 위헌 심판을 헌재에 청구해도 최대 180일이 소요돼 올 정기국회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9월 말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위한 국회법 정상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선진화법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한 뒤 12일 회의에서 위헌심판 청구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해 위헌 판결을 받아내면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게 지도부의 구상이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위헌 근거로는 선진화법의 ‘3분의2 이상 동의’ 조항을 꼽는다. 이는 헌법 제49조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에 위배되며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이라는 예외규정을 전체 법률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몸싸움방지법’으로 불리는 선진화법은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됐으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대폭 제한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3(18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본회의에 올리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야권이 선진화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어 더 이상 선진화법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소원이 헌재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천재지변 등 비상사태 같은 선진화법의 예외조항에 야당 반대 등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주호영 TF팀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보편적 의회주의 원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 중이고 대화와 타협을 키울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며 “헌법소원은 한두 번 더 회의한 뒤 이르면 이달 중 결정 날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김진태 의원도 “선진 사례를 검토한 결과 미국은 상임위에 30일 동안 법안이 계류된 뒤 결정이 나지 않으면 재적의원 과반수 동의로 본회의에 상정하게 돼 있다”며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TF 내 일부 의원은 위헌심판 청구와 별도로 당장 올 정기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기 위해서는 국회선진화법 개정 추진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상임위에서 5분의3 이상 동의하지 않으면 법안 통과가 안 되는 선진화법에 막힐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민주당 등 야권이 국회선진화법의 무력화 시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우선 새누리당이 제기하는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해 선진화법상 내년 정기국회부터는 여야가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할 경우 12월2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규정도 들고 있다. 선진화법이 문제가 아니라 여권 내의 불통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불리할 것 같으니까 국회선진화법을 당론으로 채택, 주도해 만들어놓고 이제는 거추장스러우니까 버리겠다는 발상”이라며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하지 말고 특검을 수용하면 모든 정국의 교착상태가 풀린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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