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4일 국회본회의장에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제출한 사유서를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자 여야 의원들은 숨을 죽인 채 경청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이후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의원들에게 비밀ㆍ무기명 투표를 요청한 뒤 의원들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기 시작했다.
강 의장이 이내 투표 결과 보고서를 받아 들고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합니다"라고 선포하자 여기저기서 간간이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통합진보당 의원을 제외한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의 의원들은 투표 결과에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일부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악수를 나누며 "수고했습니다"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의원 등 진보당 소속 의원 6명의 의원은 이미 결과를 예상했던 듯 무표정으로 본회의장을 응시했다. 이후 김선동 의원 등 진보당 소속 의원 일부는 여야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간 뒤 "체포동의안 처리 반대"가 적힌 카드를 말 없이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체 289명의 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찬성표는 258표가 나와 새누리당(153명)과 민주당(127명) 의원 중 일부가 당론에서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반대 14표에는 이 의원 본인을 포함한 진보당 소속 의원 6명의 표와 무소속 의원 및 새누리ㆍ민주당의 이탈표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탈표 중 상당수가 기권(11표)한 것으로 분석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진보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참석하는 의원들에게 부결을 호소한 데 이어 이 의원이 투표에 앞서 시작된 신상발언을 통해 동의안을 부결시켜줄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투표로 의사를 표했다.
이처럼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것은 새누리당의 단독 국회를 통한 강행 처리 의지가 확고했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모두 체포안 찬성을 당론으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전에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여야를 떠나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지키는 것은 한국 정당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자 헌법이 정한 기본적 의무"라며 "거대 야당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표결에 참여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해 민주당의 표결 참여를 촉구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서울시청 앞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을 위해 대한민국과 싸우겠다는 자들은 바로 우리와 우리 자식들에게 등 뒤에서 비수를 꽂겠다는 세력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헌법과 민주주의 가치에 도전하는 모든 적들과 결연히 맞서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민주당은 표결에 앞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진통을 겪었다. 일부 의원 중심으로 자유투표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당론으로 찬성을 결정, 여권의 파상공세를 막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등 상임위 개최를 요구하면서 표결이 늦어질 경우 진보당과 한 묶음으로 비춰질 수 있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새누리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에 야권 연대의 과거를 겨냥,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서둘러 선 긋기에 나서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날 투표는 합법적인 의사진행발언인 필리버스터 허용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의원 본인 인사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허용하지 않는 국회법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이석기 원내 진출 책임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이 의원의 원내 진출이 가능했던 배경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에서 야권 연대를 감행했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민주당 정권이 민혁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이 의원에 대해 사면과 복권을 단행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의원이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얻은 만큼 민주당과는 관계가 없다"며 선 긋기에 급급하고 있다. 당분간 여야 대치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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