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북핵 문제에 구애 받지 않고 경협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 역시 납치 문제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또 미국이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극우적 민족주의 체제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외교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했다. 남한의 '국가정신'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으나 국가정신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승현 중국 옌볜대 교수는 2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김정은 체제의 개혁ㆍ개방 가능성:평가와 전망'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내륙의 발전이라는 중국의 목적 아래 외부 불안요인인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 문제의 악화를 막고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을 "북한에 대한 경제적 관여를 높여 개혁ㆍ개방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북한 체제의 안정 유지와 비핵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중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 체제 안정이 중국의 대북전략인 셈이다. 윤 교수는 이어 "중국은 북한의 국제사회로의 편입을 위해 정경 분리의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에 결박시키기보다는 국제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중국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북중 간 경제협력 경향에 대해서는 "북한의 중국 경제의존도가 올 하반기에는 90%를 넘을 것"이라며 "양측이 '공동 개발, 공동 관리' 원칙하에 개혁ㆍ개방의 진로를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측은 동북아시아 냉전 체제 해소와 북미관계 해소를 위해 북일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무라 미쓰히로 일본 동북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교 정상화나 대규모 경제지원은 어렵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민주당 정권이 북한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북한이 경제개혁을 통한 국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할 경우 일본인 납치 문제가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충남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교육훈련1과장은 토론자로 나서 "일본이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제공한 공적개발원조(ODA) 경험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 바람직한 개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미관계에서 미국은 북한 체제를 보는 관점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북한의 개혁ㆍ개방 촉진을 위한 미국의 역할:탈공산주의 실패 국가 모델 방안 모색'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북한 체제가 남한의 민족주의와 국가정신 결여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며 "남한은 북한 체제를 받쳐주는 민족주의 놀음을 그만두고 국가정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가 아닌 '극단적 민족주의' 체제로 규정하며 "북한의 통치 코드인 '선군(先軍)'은 1980년대 공산권보다 선군 독일, 이탈리아와 일본에 훨씬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라고 오해해 대북정책에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1980년대 동유럽이나 중국에서는 잘 먹혔던 개혁 촉진 방법들이 오히려 북한에서는 체제를 강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국가정신의 의미가 모호하고 외려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양운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국가정신이 "반공적 이데올로기인지, 개인의 경험과 지적 연마를 통해 형성된 이상적 가치관인지, 아니면 냉철한 현실주의적 시각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 연구위원은 "70년 이상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상대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나 국익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이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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