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지만 대화의 문은 열어놓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했고 시 주석은 중국 측의 지지입장을 표명했다.
양국 정상이 '북핵 불용(不容)' 원칙을 담은 '미래 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함에 따라 앞으로 대북정책에 전환점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우회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표현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북한을 직접 겨냥한 한단계 높은 차원의 메시지를 제시한 것은 북한을 둘러싸고 한미중 3국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양국 정상은 5개 부문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에 '한반도 문제'를 넣어 북한의 비핵화와 신뢰 프로세스 가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전면으로=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오후 북핵 불용을 선언하는 한편 북한이 국제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에도 의견을 함께했다.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중시하는 기조는 이전부터 이미 감지됐다. 지난 16일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한국을 방문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한반도정책 3요소인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가운데 비핵화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거 중국은 3원칙 중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가장 중시했다. 이에 따라 역대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수립 희망(1998년 11월 김대중 정부)' '북한 핵 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2003년 7월 노무현 정부)' 등 원칙적 수준에서의 합의만 이뤄졌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게 부정적인 견해를 전하는 등 북핵과 관련해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
시 주석은 7~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용인하지 않겠다"며 북핵 불용 원칙을 강하게 내세웠다.
◇한미중 3국 공조 가속화=북한의 비핵화가 한중 정상회담에서 전면으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북핵을 둘러싼 '한미 대 북중'의 대결구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탕 전 국무위원은 16일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중국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중국은 '한미중 (전략) 대화'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3국 공조 틀이 잡히고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강화에서 3국 공조로 방향을 튼 데는 2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영향이 크다. 당시 중국은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엄격히 집행하라는 공문을 각 산하기관에 전달할 만큼 대북 제재에 실질적으로 동참했다. 이에 따라 비핵화에 공감한 한미중이 앞으로 북한에 어떤 액션플랜을 취할지 주목된다.
당장 '조(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 52주년이 되는 오는 7월11일, 북한과 중국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이 변화된 입장을 보이는 이상 우호조약의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나오면서도 당장 중국에서 한국이 요구하는 수준만큼의 북한 압박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의 비핵화 원칙이 계속 유지되는 만큼 한미중 공조를 기반으로 한 6자회담 재개 쪽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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