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차별 등 당면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안정화가 병행돼야 합니다."
정이환(사진) 서울과학기술대 사회학 교수는 최근 서울시청에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주최로 열린 '고용 시스템' 정책 포럼에서 네덜란드·덴마크 등 선진국처럼 고용안정을 중시하면서 유연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고용 시스템이 추구할 방향으로 '유연안정성'을 뽑았다. 명예퇴직 등 비자발적 해고를 되도록 줄이면서 기업의 임금조정 여지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지난 2013년 기준 해고 규제지수를 보면 한국의 정규직 해고 규제 강도(2.17)가 스웨덴(2.52), 덴마크(2.32)보다 높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정리해고는 어렵지만 명예퇴직은 산업별로 널리 이뤄지는 만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신 기업 내 임금체계를 다양화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경영사정으로 조업 단축이 불가피할 때 임금을 삭감하거나 일시 휴직자의 임금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하더라도 고용조정은 있기 마련"이라며 "다만 저항을 줄이려면 전직지원 강화, 복직 관행 제도화 등 수용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 대상을 연공형 임금으로 봤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운동 발전으로 노조가 직종 간 차등 철폐를 추진한 후 기업 내 단일호봉제가 널리 도입됐으며 이에 기업은 상대적 단순 직무의 비정규직화와 외주화로 대응하면서 노동시장 분절구조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연공형 단일호봉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외부화를 막는 길"이라며 "대기업 중심의 임금 결정 시스템도 기업 간 임금 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이므로 유럽에서 시행하는 단체협약 효력 확장이나 직종·직무별 임금을 일정 부분 균등하게 하고 조율하는 방안을 장기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과 그 나머지 근로자 간 격차로 나타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현재 기업 중심의 분절된 고용체계를 바꾸려는 노사의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지만 노사 모두 그럴 의사가 없다는 게 정 교수의 판단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지난달 말부터 연일 밤샘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지만 한국노총의 조건부 불참 선언 이후 주말 대표자회의를 열지 못했다. 그는 "독일·네덜란드 등이 노동개혁을 이룬 것은 최악의 실업률에 따른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고용 불안·불평등이 위험 징후라고 보고 있지만 지난 외환위기 때 같은 위기의식은 없어 현재 고용체계 기본 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대기업 중심 고용체계 외부에 존재하는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시장개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가령 그동안 사내 하청 근로여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던 노조가 그 방향을 사외 협력업체까지 확대한다면 성과를 얻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