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수십년간 채무를 갚기 전에 채권담보 목적물인 부동산을 넘겨주지 않고 이를 팔아치운 이들은 대부분 배임죄로 처벌을 받아왔다. 일각에서는 부동산을 팔아도 돈으로 갚으면 되는데 배임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 이번 판결로 앞으로 대물변제약정을 어겨 배임죄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전과자가 될 굴레를 벗어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1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택시운전사 권모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채권담보 목적으로 대물변제약정을 체결한 채무자가 약정에 의해 부동산의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이전해야 할 의무는 채무자의 '자기 사무'에 해당할 뿐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채무자가 원래의 채무를 변제하기 전에 대물로 제공하기로 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도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쉽게 말해 대물변제약정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줄 의무는 약정 당시에 확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차용금을 제때에 반환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채무자가 부동산을 처분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채무자의 업무 행위라는 설명이다.
권씨는 지난 2008년 정모씨에게 3억원을 빌리면서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모친 소유 부동산 상속분으로 변제(대물변제)하기로 약정했다. 권씨는 지난해 모친으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은 부동산을 누나 등에 매도했다가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권씨의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고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법상 배임죄는 구성요건의 추상성으로 인해 형벌법규의 취지에 맞게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판결은 배임죄의 해석에 있어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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