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주요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낮춘 것은 세계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당초 우려보다 훨씬 암울하다는 의미다. 특히 미국 및 유럽ㆍ일본 등 선진시장의 충격에 대해 ‘중국의 쿠션’이 기대만큼 작동하지 못한다는 현실인식을 바탕에 뒀다. 이 때문에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인지 여부는 ‘제3의 희망’으로 주목 받는 중국이 성장동력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동시에 미국을 시발점으로 전세계에 빠르게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가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공감대를 어느 수준까지 이끌어낼 것이며 보호무역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위기의 근원지인 금융시스템의 복원도 관건이다. IMF는 당초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9%로 예상했으나 이번에 6.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성장 마지노선인 8%를 밑돈다는 평가다. 다만 중국이 내년에는 8%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봐 최소한의 희망을 남겨놓았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는 “중국이 경제성장률 목표인 8%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 1월28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을 통해 “올해 중국 경제 성장의 목표는 8%”라고 재차 강조하며 경기부양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4조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안 외에 추가 경기부양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희망사항일 뿐 현실로 착근시킬지는 미지수다. 주요 신흥국의 성장률도 주목대상이다. IMF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올해 3.3% 성장하는 가운데 대표 국가인 브릭스(BRICs) 중 러시아가 올해 -0.7%인 것을 제외하고 인도(5.1%), 브라질(1.8%) 등은 당초 전망치보다는 2~4%포인트 정도 낮아졌지만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내년에는 신흥국이 5% 성장하는 등 회복세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아세안 주요 5개국도 올해 2.7%, 오는 2010년 4.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아시아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능력을 갖춰 빠른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각국의 경기부양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금융시스템 복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계 경제 침체국면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IMF가 각국에 적극적인 통화와 재정정책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보호주의는 글로벌 경기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설 경우 국제 교역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금융보호주의로 인해 신흥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진국들이 위기에 빠진 자국의 금융기관만 지원하면서 해외 차입에 의존해온 신흥국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호주의 장벽은 또 산업 전반으로 확산돼 미국 하원의 경우 최근 8,19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투입되는 철강재는 미국산만 써야 한다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넣기까지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더더욱 절실하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자유무역 정신을 존중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지만 말 그대로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4월2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2차 G20 회의는 국제 공조의 불씨를 되살릴 몇 안 되는 기회. 유럽 주요국은 회의에 앞서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회동하는 등 각국의 G20 회의 대비가 본격화하고 있다. 2차 회의에서는 금융보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IMF의 역할 강화, 금융 규제시스템 개혁과 최근 확산되고 있는 자국 산업 보호를 어떻게 차단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이 세계 경제 회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국 이기주의를 얼마나 벗어 던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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