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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피묻히기 싫은 여·야·획정위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기준을 정하는 여야와 이를 바탕으로 선거지도를 그리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선거구획정위 모두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운신 폭이 좁은 것은 김 새누리당 대표다. 김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선거구간 인구 편차 2:1 결정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는 농어촌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는 당 소속 의원들의 요구를 관철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에 야당은 농어촌 지역구를 보장하기 위해 비례대표 축소는 불가하다고 맞서며 권역별 비례대표를 수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비례대표 숫자가 줄더라도 권역별비례대표를 도입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야의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의원정수 소폭확대’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야권을 향해 ‘반개혁’이라고 주장했던 터라 말을 번복 하기 쉽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유연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 의원정수 문제에 너무 단호하게 거부한 바 있어 향후 논의가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치개혁특위가 여야 동수로 각 10명씩 꾸려져 다수당의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11월 13일을 선거구 획정기준 의결시한으로 못 박은 상태라 ‘시간은 야당편’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를 이룬 농어촌의원들이 제안한 ‘농어촌특별선거구제’에 대해 김 대표가 ‘편법’이라고 거부한 배경에는 청와대뿐 아니라 당 소속 의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김 대표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상 김 대표가 각 권역별로 농어촌특별선거구를 선정해야 하지만 선정 받지 못한 농어촌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당론으로 비례대표 축소 불가침을 선언한 상황에서 농어촌 의원들이 “비례대표를 줄이더라도 농어촌 지역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협상 카드’가 줄었다. 단 새누리당에 비해 감소 되는 농어촌 의석수가 적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문제로 친박과 비박의 싸움에 한가운데에 놓인 김 대표보다는 상황이 양호하다는 평가다. 아울러 정개특위에서 획정기준을 끝내 개정하지 못할 경우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농어촌 의석 감소 등 민감한 부분을 선거구획정위가 결정해준다는 것도 문 대표의 부담을 덜어 준다.



선거구획정위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내년 4월 20대 총선의 지역선거구 수를 244∼249개 범위 중 몇 개로 할지 ‘단일안’을 도출하려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획정위는 다음 달 2일 오후 2시 회의에서 선거구 수를 확정하기로 했다. 여야가 공방을 벌이는 중 선거구획정위는 현재의 선거구획정기준과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반영해 독자적 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과 같은 246석이 유력시되는 이유는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자는 여당과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야당의 의견을 반반씩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선거구획정위가 소위 여야의 입장을 반반 반영한 246석을 제시할 경우 새누리당은 적극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회가 재심사를 요구하더라도 획정위가 거부한다면 이를 돌이킬 방법은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대치할 경우 해법은 여야 둘 중 하나가 결단을 하거나 의원정수의 소폭 증대밖에 없다”며 “민간인으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가 의원정수 증대의 필요성을 언급한다면 새누리당도 이를 출구전략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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