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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바둑 영웅전] 눈물겨운 고심의 산물

눈물겨운 고심의 산물



공중전이 어려운 것은 공중에는 정석이 없기 때문이다. 스즈키가 60년대에 펴낸 정석대사전(1985년에 번역되어 가야출판사가 한국어판을 냈음)에는 2만5천 개의 정석이 실려 있는데 모두가 귀와 변을 둘러싼 공방전을 다룬 것들이다. 공중전의 행마는 당사자가 현장에서 창안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프로들도 공중전이 벌어지면 시간을 물쓰듯하며 고심한다. 흑87이 놓인 시점. 박문요가 15분을 장고했다. 그 사이에 검토실에서는 수많은 가상도가 만들어졌는데…. 참고도1의 백1 이하 백5는 백홍석7단이 타이젬에 올린 가상도. 이것은 흑이 A를 두게 되므로 ‘백이 다소 불만’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참고도2의 백1 이하 백5는 김영삼8단이 사이버오로에 올린 가상도. 흑이 A로 두게 되므로 ‘흑 통쾌’라는 설명이 붙었다. 프로들의 감각은 대개 비슷하다. 박문요의 머릿속에 여러 개의 가상도가 그려졌다가 지워졌을 터인데 모두가 우하귀를 흑이 두게 되는 것들이었으리라. 박문요는 드디어 작심을 하고 백88을 선택했다. 아마추어 초급자의 행마 같은 이 소박한 연결. 이렇게 되면 흑89는 쟁탈의 급소가 된다. 이세돌은 노타임으로 흑89를 두었다. 대신에 박문요는 백90이라는 요충을 점령했다. 흑이 눈목자로 슬라이딩하는 그 통쾌한 활용 수단은 일단 사라졌다. 눈물겨운 고심의 산물이 백88, 백90이었던 것이다. /노승일·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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