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치는 유로존의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 잠정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디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한 데 따른 것이다. 그만큼 디플레이션 및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ECB가 올해 5,000억유로의 국채를 매입할 경우 2,200억유로로 예상되는 신규발행분은 물론 민간 금융기관이 보유 중인 물량을 사들이는 데도 쓰이게 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유로화 약세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거기까지다. 이번 양적완화만으로는 물가상승률을 ECB 목표치인 연간 2%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자칫 자산가격 거품만 키울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양적완화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과 구조조정 노력이 병행돼야 하지만 그럴 여력도,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특히 유로존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에서는 1·25 총선에서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급진좌파연합의 승리가 예상돼 국제금융시장에 또 한번 충격을 줄 수 있다.
유동성이 늘어난 금융기관들은 역내 대출수요가 미진한 만큼 유로존 안팎, 특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미국과 영국 등 역외주식·채권 등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작 돈이 필요한 유로존 취약국들은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유로존의 구조조정 노력과 재정통합 등 실질적 해법이 없는 양적완화는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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