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회계 부정, 특혜금융…. 마치 개발연대에 드러난 한국 재벌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다름 아닌 미국 최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이야기다. 미국 재무부의 조치로 민간 기업에서 국영기업으로 넘어가고, 최고경영자(CEO) 들이 잘리기는 했지만, 두 회사의 경영부실은 미국 경제를 무너뜨릴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서민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대주겠다며 출발한 이들 두 회사의 몰락과정을 짚어본다. 패니매 갱의 몰락.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칼럼에서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워싱턴 정가의 비호와 월스트리트 동맹군의 지원을 받으며 온갖 특혜를 누려온 갱단(gang)과 같다"다며 이같이 이름을 붙였다. 워싱턴 정가에 대규모 로비스트를 동원해 정부의 각종 규제를 피해가고 뉴욕 월가 금융회사와는 악어와 악어 새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방만한 경영을 해온 것을 비꼰 것이다. 두 회사는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세금(공적자금) 덕분에 겨우 생명 줄을 이어가게 됐지만, 팬-프레드(Fan-Fred)의 갱들은 몰락하게 됐다. 패니매는 대공황 시절인 1938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주택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만든 정부기관으로 출발했다. 패니매는 독과점 상태에서 정부 발행 모기지 채권의 유동화를 전담하는 특혜를 누렸다. 미 행정부는 1968년 베트남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패니매를 포함한 다수의 국영기관을 민영화했다. 패니매의 독점을 막기 위해 1970년 설립된 프레디맥도 1989년 민영화됐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현재 뉴욕 증시에 상장되어 있고 씨티그룹 등 기관투자자와 뮤추얼펀드 등이 주주인 순수 민간회사다. 그러나 두 회사는 국가의 정책 목표인 주택공급에 안정적인 자금을 지원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정부가 암묵적으로 보증을 하는 이른바 '정부 후원형 사기업(GSEㆍ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이라는 형태로 존재해왔다. 전문가들은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몰락은 이 같은 특수한 상황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형식적으로는 민영화됐지만 공공기관의 성격을 띠면서 사기업처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영으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든든한 보증을 배경으로 경쟁적으로 채권을 발행,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확장하는가 하면 독과점 형태로 벌어들인 이익을 임직원과 주주들에게만 사용해온 두 회사의 몰락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유사 공기업(quasi-government company) 행세를 해왔다"고 꼬집었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방만한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2003년과 2004년 잇따라 터진 회계 스캔들이다. 당시 패니매는 경영진의 보너스를 높이기 위해 4년에 걸쳐 순이익을 90억 달러 이상 부풀렸으며, 프레디맥은 70억 달러의 손실을 숨긴 것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두 회사 모두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진의 상당수가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회사의 이익은 민간 주주와 임직원들이 챙겨가는 반면 회사의 리스크는 정부가 져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이처럼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도 그 동안 정부의 대규모 수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의회의 유력 정치인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로비를 벌여왔고 그 덕분에 정부의 각종 규제를 비켜가고 고비 때마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지난 2004년 미 의회의 한 위원회가 패니매에 대한 규제 문제를 검토기로 하자 이 회사는 위원회 개최 하루 전날 이 위원회를 공격하는 TV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특히 은행에 비해 느슨한 자본금 충족 기준이 적용되고 세제상의 혜택을 받아 온 것은 대표적인 특혜로 꼽힌다. 정치전문 일간지 폴리티코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각종 스캔들과 위기를 비켜간 것은 정치권과의 로비 커넥션 덕분이라며 두 회사가 지난 10년간 로비에 사용한 돈은 각각 9,480만 달러, 7,95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정부의 지급보증이라는 안전한 우산과 대 의회 로비를 통한 워싱턴 정가의 비호, 그리고 모기지 자산 유동화 기관으로서 월가 금융기관에 안정적으로 제공해온 수수료라는 삼각 커넥션 덕분에 성장해왔다. 두 회사가 미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불구, 공격적으로 모기지 자산을 불리며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은 이 같은 삼각 커넥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직접 매입했거나 보증한 채권규모는 지난 6월말 현재 각각 2조2,000억 달러, 3조 달러 등 총 5조2,000억 달러로 미국 내 2차 모기지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지난 1990년 총 7,400억 달러에서 20여년 만에 7배나 급증한 것이다. 그러나 패니매와 프레디맥라는 모기지 시장의 거물도 결국 주택가격의 하락 및 신용시장의 경색이라는 파고를 견디지 못했다. 두 회사는 모기지 부실로 지난 1ㆍ4분기에만 각각 22억 달러, 1억5,100만 달러의 손실을 냈으며 주식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져 휴지 조각이 됐다. 그리고 경영진들은 해고되고 회사는 연방주택금융지원국(FHFA)의 관리감독을 받게 됐다. 가장 큰 타격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