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가노바 발레학교. 졸업반인 9학년 여학생 11명이 한 손으로 발레 바를 붙잡고 그랑 빠뜨망(Grand Battementㆍ다리를 크게 차는 동작)을 하다가 앙오(En Hautㆍ두 손이 머리 위까지 올라와 큰 동그라미를 만드는 동작)를 하면서 기본 동작들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담당 교사인 류드밀라 코바류바 씨는 연신 손뼉을 치고 박자를 맞추며 학생들의 동작을 일일이 고쳐주고 있었다.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키로프 발레단의 부설 발레학교로 1738년 안나 여제가 프랑스의 무용가 장 밥티스트 랑데를 초청해 만든 러시아 최초의 황실무용학교가 모태다. 이 학교 출신인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가 1930년대 개발한 전통 교육 지도법을 바탕으로 운영되면서 1957년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러시아 발레단은 모스크바의 볼쇼이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바가노바 발레학교는 조지 발란신, 루돌프 누레예프, 안나 파블로바 등 세계적인 무용수들을 배출했으며 출신 무용수 상당수가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 발레의 문법으로 통하는 바가노바 메소드(method)로 유명한 이 학교는 무용수의 내면과 표현력을 강조한다. 또 역동적인 힘을 중시하는 볼쇼이와 달리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을 중시한다. 이곳에서 만난 안예원(19) 씨는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무용과 1학년을 다니던 중 지난 10월 6학년으로 편입했다. 초등학교 4년 과정을 마친 후 만 10세부터 입학할 수 있는 이 학교는 9년 학제로 구성돼 있다. 안 씨는 "상체를 크게 사용하면서도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을 만드는 게 한국에서 배웠던 발레와 다른 점"이라며 "한국에서도 바가노바 방식으로 배웠지만 이곳에선 훨씬 더 정확하고 디테일한 동작을 요구받는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선 한 해 평균 60명 정도를 뽑으면 이 중 20명 정도만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실력으로 재목을 걸러낸다. 알티나이 아실무라토바(49) 발레학교 예술감독은 "바가노바 메소드에 따라 그 나이에 소화해야 할 춤의 형태와 속도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대열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발레학교 학생들이 무용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국어와 수학은 기본이고 무용학, 예술학, 민속춤, 모던댄스, 체조 등 다양한 과목을 습득한다. 베라 도로피에바(65) 바가노바 발레학교 교장은 "단순히 '춤추는 기계'가 아니라 '춤을 이해하고 영혼으로 표현할 줄 아는 무용수'로 키우기 위해서 다양한 공부가 필요하다"며 "러시아 발레가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바가노바 발레학교처럼 우수한 전문 교육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발레단보다 발레학교가 먼저 필요하다"는 세계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의 말은 바가노바 발레학교가 있기에 마린스키 발레단과 같은 세계적인 발레단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러시아에는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포함해 총 16개의 국립발레학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한국 발레 수준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제 국내에도 전문발레학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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