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상금왕에 오른 그에게 해외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이 빗발쳤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겠다. 빨리 나가는 것보다 어떤 모습으로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서희경(24ㆍ하이트)은 서두르지 않았고 결국 그의 결정은 옳았다. "한국 최고로 인정 받은 뒤 나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던 그가 '한국 최고가 곧 세계 정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며 자신의 이름과 한국 골프의 위상을 세계에 알렸다. 서희경은 2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라코스타골프장(파72ㆍ6,625야드)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IA클래식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치며 선두 자리를 지켜내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6타 차 완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KLPGA 무대를 평정했던 그는 초청 선수로 출전해 LPGA투어 사상 15번째(승수로는 19번째) 비회원 챔피언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6번째 LPGA 대회 출전 만에 거둔 첫 승으로 한국 기업이 창설한 대회의 초대 챔피언에 올라 의미를 더했다. 우승상금은 25만5,000달러. 이번 우승으로 서희경은 퀄리파잉(Q)스쿨 없이 올해 또는 내년 시즌부터 LPGA투어에 직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경기 직후에도 서희경은 "올해 KLPGA투어에 전념한 뒤 미국 진출에 관해 생각하겠다"며 여전히 서두르지 않는 자세를 지켰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힘은 무명 시절 단련이 됐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지난 2006년 프로에 데뷔한 서희경은 2008년까지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낙담하지 않고 샷의 날을 세웠다. 2008년 8월 하이원컵에서 우승 물꼬를 트더니 그해 하반기 6승을 쓸어 담으며 골프계를 놀라게 했고 지난해에도 상금왕, 대상, 상금왕, 다승왕(5승), 최소타수상을 휩쓸었다. 후원 계약에서도 금전보다는 성적을 중시했다. 상품성에 매료된 기업과 용품업체가 계약기간이 만료된 지난해 말 무수히 '러브콜'을 보냈지만 하이트맥주와 인연을 지켰고 낙생고 시절부터 줄곧 사용해온 브리지스톤(투어스테이지) 골프용품을 고집했다. 이날도 조급해하지 않은 '서희경표 골프'가 빛났다. 1번홀(파4)에서 전날과 똑같이 보기를 범하며 삐걱했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3번(파5)과 4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뽑아내며 흐름을 다잡았다. 7번홀에서도 1타를 잃었지만 8번홀(파5)에서 10m 가량의 칩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어 만회했고 13번홀 버디에 이어 14번홀(파4)에서 다시 칩인 버디를 꽂아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린 끝에 2타를 잃었으나 곧바로 17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은 뒤 미소를 지었다. 박인비(22ㆍSK텔레콤)가 2위(6언더파), 신지애(22ㆍ미래에셋)와 이지영(25)이 공동 3위(5언더파)에 오르는 등 한국 자매들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