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들은 무사히 위기를 넘기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줄인다. 프랑스의 광고기업인 퍼블리시스는 올해 세계 광고시장이 7%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불황이거나 말거나 마케팅 비중을 축소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기업들도 상당하다. 이들은 어떤 결과를 얻을까. 미국 기업단체인 아메리칸 비즈니스프레스(ABP)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74~1975년 경기침체기에 마케팅 비용을 줄이지 않은 기업들은 경기회복 후 마케팅 비용을 아꼈던 기업들보다 세 배 더 많은 수익을 거뒀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연구에서도 지난 2001년 경기침체기에 공격적인 마케팅 작전을 펼쳤던 기업들이 경기회복 후에 경쟁자들을 눌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 새 시장에 주목하는 마케팅= 무조건 광고 물량공세를 퍼붓는 건 낭비다. 전문가들은 대신 창의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를 통해 '여성 전용 마케팅'을 선보인 휴렛패커드(HP)의 사례를 소개했다. 컴퓨터 기업들은 보통 남성 고객들을 공략하기 마련이지만, HP는 뉴저지 주에 있는 '틴 보그' 매장에 빨간색ㆍ분홍색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놨다. 10대용 패션잡지 틴 보그의 팝업 스토어(pop up storeㆍ제품 홍보 등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인 틴보그 매장에서는 옷을 입어보거나 구입할 수 있고, 매장에 설치된 HP 컴퓨터를 두드리며 잠시 쉴 수도 있다. 이곳에 있는 HP 컴퓨터에는 자신의 사진으로 잡지 표지를 꾸밀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내장돼있기 때문이다. HP는 지난해 말에도 세계적인 디자이너 비비안 탐이 디자인한 넷북을 내놨다. HP의 '비비안탐 스페셜 에디션'은 화려한 문양과 강렬한 색깔로 여성 고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식품, 세정제 등 생필품 제조업체들은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열렬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히스패닉들은 평균적으로 백인들보다는 소득이 적다. 반면 시장조사기관인 익스페리언 시먼스에 따르면 히스패닉들은 백인들보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카드빚이 적고, TV 광고 등에서 많이 본 상품을 택하는 경향이 높으며, 가구당 근로자가 2명 이상 있을 확률도 높다.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서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식료품 제조업체 제너럴밀스는 지난해 스페인어 방송채널에 대한 광고지출을 세 배 이상 늘렸다. 광고모델로는 당연히 히스패닉계 스타를 기용했다. 덕분에 광고제품의 매출이 두자릿수 이상 급성장했다. 제너럴밀스 뿐만 아니라 프록터앤갬블(P&G), 존슨앤존슨 등도 히스패닉 고객들을 적극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내 3대 히스패닉 방송채널인 유니비전, 텔레문도, 텔레푸투라 등의 광고수입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아예 올해 내로 히스패닉 전용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 접근 방식을 바꿔라=마케팅의 '통로'에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컴퓨터기업인 델의 에린 넬슨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지난달 포브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연결성, 상호작용성, 참여성이 살아있는 새로운 도구와 매체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에서는 끊임없이 상품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 특히 자사 제품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열성팬'들의 커뮤니티 결성을 지원하라는 주문이다. 언뜻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실행에 나선 기업들은 많지 않다. 넬슨 CMO도 "미국 기업들 중 블로그를 개설하는 등 온라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업은 1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매체를 이용한 기발한 광고도 불황에 지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좋다. 리바이스트라우스의 의류 브랜드인 '다커스'는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폰의 동작 인식(motion-sensitive) 기능을 활용한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가 시작되면 한 댄서가 나와 "아이폰을 흔들면 춤을 춘다"고 말한다. 아이폰을 들여다보는 시청자가 손에 쥔 아이폰을 흔들면 광고 속의 댄서가 춤을 춘다. 그야말로 '쌍방향성 광고'다. 이전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아이폰의 인기를 이용하려 들었지만 다커스처럼 아이폰의 개성을 십분 활용한 적은 없었다. 포브스는 "TV 광고만큼이나 아이폰 광고의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고 지적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려면 아이폰 광고처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불황 때 이미지 높인다=불황인데도 일부러 돈을 들여 로고나 상품 포장을 바꾼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친숙함을 잃더라도 새로운 외양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스내플은 지난해 매출이 4% 감소하자 올해 3월 37년 만에 처음으로 디자인을 바꿨다. 자동차의 컵 홀더에 맞도록 용기가 더 날씬해졌고, 겉면에도 '천연원료 사용'이라고 부각시켜 웰빙 이미지로 거듭났다. 크래프트는 50년간 사용해왔던 딱딱한 로고를 버리고 부드러운 새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케팅기업인 랜더 어소시에이츠의 앨런 애덤슨 전무는 "불황기야말로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물론 무조건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 펩시에서 만드는 오렌지주스 '트로피카나'는 빨대가 꽂힌 오렌지가 그려진 종이팩 용기를 바꿨다가 소비자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보다 신중한 결정이 수반돼야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 한편 저가 공세는 불황 마케팅의 대표 선수 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포 수를 늘려나가고 있는 일본의 신발 판매점 ABC마트는 신발 두 켤레를 한꺼번에 사면 한 상품은 50% 할인해주는 마케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가구ㆍ인테리어용품 전문점인 니토리는 지난해 5월 이후 4차례나 가격을 인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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