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 유럽연합(EU) 주요국들이 증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를 살리면서도 정부부채는 줄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이들 유럽 국가들에서 세금 부담을 어떻게 늘릴지에 대한 사회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집권 보수당이 시행 3개월여를 맞은 일명'베드룸텍스(bedroom tax)' 문제로 민심이반의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서 월세를 내지 못하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속출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주택협회(NHF)는 "시행 석달 만에 전체 세입자의 절반가량이 영향권에 들었다"면서 "장기적으로 주택포기 가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베드룸텍스는 방이 많은 가구에 지급되는 주택보조금을 여분의 방 하나당 14%가량 삭감해 복지혜택이 남용되는 것을 막고자 최근 도입됐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래 정부 주택보조금으로 월세를 납부하고 일부 식비까지 충당해온 가구들이 대거 '미지불' 상태에 빠지면서 파장이 커졌다. 실제 서클하우징그룹이 관리하는 영국 주택 6만5,000가구 중 약 25%가 최근 월세를 납부하지 못했고 25%는 부분납부에 그쳤다.
이 가운데 노동당이 오는 2015년 차기 총선에서 집권할 경우 관련 법안을 폐지하겠다고 밝히며 집권 여당에 등을 돌리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다. NHF는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정책폐지에 찬성했고 79%는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법인세 개혁안이 여론의 극심한 반대로 시행도 되지 못한 채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날 르피가로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실시 예정인 법인세 개혁안을 폐기할 방침"이라며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한시적 세제증액 등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법인세 부과방식 변경 등을 통해 내년 25억유로의 증세를 추진했다. 하지만 법안이 공고되자 프랑스 대기업들은 "기업 전체의 세율부담이 더욱 커진다"고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의 경우 법인세(33%)를 비롯한 기타 세금이 주요국 최고 수준이고 전체 세 부담률도 국내총생산(GDP)의 46.1%에 달한다"며 "(다른 나라보다) 높은 세율에 시달려온 대기업의 반발에 정부가 무릎을 꿇은 셈"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22일 총선을 치른 독일에서는 각 당이 세금 문제 등으로 충돌하면서 연정 협상이 2주 넘게 지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집권 보수연합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돼온 사민당(SPD)의 안드레아 나알레스 사무총장의 발언을 인용해 "(의견조율이 늦어지며) 연정 구성이 연말이나 내년 1월까지 지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보수연합은 지난 총선과정에서 '무증세'를 못박아 '3선 신화'를 이룬 반면 사민당은 '부자증세' 및 '복지재원 확충'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어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
연정 구성이 지연되자 집권 보수연합은 지난주 말 새 파트너인 녹색당과도 이번주부터 협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녹색당과의 정책차이가 사민당보다 큰 편이어서 연정 구성은 당분간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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