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출생지는 화개(장터), 본적은 순천. 사람 관계도 화개초등학교와 순천 중·고등학교 동문들로 얽혀 있다. 행정구역상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들이 필자를 중심으로 융합(?)돼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지리산과 백운산의 정기, 그리고 남해의 기운까지 어우러져 있는 참으로 살기 좋은 지역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얼마 전 TV 생방송에서 진행자가 필자의 어릴 적 전통시장의 추억을 물어 왔다. 서슴없이 '화개장터'의 씨름판과 '순천아랫장'의 기정떡(막걸리를 넣어 발효하는 술떡)을 꼽았다. 그 당시 많은 상인들이 화개장터와 인근 하동장·광양장·구례장, 그리고 순천아랫장과 웃장을 돌아다니며 먹을거리와 생활물품을 팔고 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화개장터에서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너 광양 백운산 자락으로 소풍을 다닌 기억도 있다.
교통이 고도로 발달된 요즘 섬진강을 중심으로 상호 인접해 있는 순천-광양-하동-남해-여수는 긴밀하게 경제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섬진광역권이다. 인구도 합치면 100만명이 넘는다. 이 정도 규모면 주민의견을 존중해 가칭 섬진광역시를 추진해볼 만도 하다.
아마도 융합(convergence)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이념을 넘어 자원을 공유하고, 녹여서 더 큰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요즘 필요한 통섭·융합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본의 아니게 융합형 삶을 살아왔고 성장 후에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과 함께해온 만큼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감정이 무의미한 것임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다.
우리 공단도 마찬가지다. 최소 5년 이상 다른 분위기와 체제로 운영해오던 각 기관이 모여 하나를 이룬 만큼 '낯섦'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각자의 전문성이 어우러질 때 그 기운은 경치 좋고 살기 좋은 내 유년시절의 풍경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조화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의견을 모으고 빠른 시간 내에 서로가 낯섦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써왔다.
요즘은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로 젊은 세대일수록 나고 자란 지역만의 정체성(identity)을 찾는 것이 어려워진 듯하다. 필자가 그러했듯이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서로와 결합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된 만큼 융합의 정신은 시대적 흐름이 됐다.
각기 도(道)가 다른 섬진광역권의 형성이 큰 경제적 가치를 가져오듯 의미 없는 분쟁은 날려버리고 창의적으로 결합해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효율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