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발전설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짐에 따라 수요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수요관리로 방향을 틀었다. 수십년간 이어온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변화를 줘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이 주목 받는 것도 이 같은 에너지 정책의 변화 탓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에관공은 에너지 절약, 효율 향상,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보급 등을 담당하고 있는 에너지 수요관리의 첨병이다. 에너지 정책이 수요관리로 방점이 찍힌 만큼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에관공의 역할은 크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취임해 눈코 뜰 새 없이 여름 전력위기를 넘기고 있는 변종립(52) 신임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수요관리의 핵심수단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꼽았다. 그는 "전기요금을 확 올려야 한다. 인상 없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이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력수급 문제와 관련해서는 "블랙아웃 우려가 결코 없어진 상황이 아니다"라며 "8월 둘째 주 최대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명동이나 강남을 가보면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정말 많이 개선됐다"며 에너지 절약 정책을 따라주는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전기요금 문제와 직접적 관련이 있거나 요금을 결정 지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변 이사장은 '전기요금 인상'은 수요관리는 물론 신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사업의 발전의 주요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정부ㆍ시민단체ㆍ에관공 등이 나서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홍보를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저렴하면 각 경제주체들의 피부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전기요금과 에너지 효율 향상,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홍보와 캠페인만으로 에너지 절약 의식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무작정 발전설비를 늘리는 것도 이미 불가능해진 만큼 전기요금 현실화라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재생 발전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필요한 문제다. 그는 "정부가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만들면서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전기요금) 시스템에서는 (신재생) 비중을 올릴 방법이 사실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높아 현행 체제에서는 원가를 맞추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에너지 효율 향상 사업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는 게 그의 분석. 변 이사장은 "지난 6년 동안 2,900개 기업이 에너지 진단을 받았는데 이들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잠재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6,000억원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전기요금이 인상된다면 산업계는 정부가 하지 말라고 해도 에너지 효율 향상 사업에 적극적으로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의 진보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요금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 이에 대해 그는 "이제는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고장과 밀양 송전탑 갈등 등으로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이 전기요금 문제를 공론화할 좋은 기회라는 의미다. "전기요금은 사교육 문제랑 똑같아서 누구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동안 우리 산업계 등이 (싼 전기요금의)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려왔지만 이제는 국회와 관계부처 등이 나서서 적당한 합의점을 모색해야 합니다."
원전 3기 가동 중단으로 예비전력이 모자란 상황이지만 이달까지 전력수급은 그런대로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 장마가 예상보다 길게 찾아온데다 예방정비에 들어갔던 일부 원전이 재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 이사장은 그러나 "아직까지는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진짜 고비는 8월5일께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력당국에 따르면 휴가철이 끝나고 산업계가 조업에 복귀하는 8월 둘째 주는 폭염까지 겹치면서 올여름 전력수급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비전력이 보통 400만㎾ 이상으로 유지가 돼야 전력수급이 안정적인데 이 시기에는 예비전력이 200만㎾가 모자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변 이사장은 "연속되는 무더위로 전력수요가 갑자기 치솟거나 대형 발전소 1~2기가 고장 나는 돌발변수가 생기면 2011년의 순환정전 사태를 넘어 광역정전까지 갈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며 "8월이 아닌 9월까지도 긴장을 늦추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대 전력 보릿고개를 앞두고 가정에서 대기전력을 최대한 줄이고 에어컨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조사를 해보니 가정 내에서 낭비되는 대기전력량이 총 62만㎾에 달했습니다. 전국 가정의 모든 가전기기가 동작하지 않고 플러그만 꽂혀 있어도 50만㎾급 화력발전소 1기 이상의 전력이 필요 한 셈입니다." 줄줄이 새는 전기를 잡기 위해 범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력 피크 시간에 에어컨을 약하게 켜고 에어컨 밑에 선풍기를 회전 상태로만 두어도 에어컨을 강하게 튼 것과 비슷한 냉방효과를 내면서 약 20~30%의 냉방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시설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냉방기기도 앞으로는 에너지관리공단이 나서 비중을 조금씩 줄여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철 전력수요의 24%가 냉방에 사용되고 있는데 전기요금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스요금 때문에 전체 냉방장치에서 가스식 냉방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변 이사장은 "앞으로 가스 냉방시설 등에 대한 설계 및 설치 보조금을 확대하면서 전기 냉방의 비중을 최대한 줄여가는 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력당국의 전력 수요관리 방식도 너무 안이했다고 진단한 그는 다양한 수요관리 사업들을 발굴할 계획도 내놨다. 그는 "지금은 여름과 겨울철 전력피크 때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이 몇 군데 큰 기업들을 잡아서 전력감축을 요청하고 이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력수요를 줄여왔다"며 "이 같은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수요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전력당국이 미리 전력을 감축할 수 있는 사업자들을 모으고 이들을 전력 거래시장에 참여시켜 수요관리를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며 "이 같은 사업에 공단도 사업자 중에 하나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관공은 또 에너지 고효율 가전제품 보급과 LED 등 고효율 조명기기로의 전환 사업도 올해부터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원자력이나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유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각종 규제 등에 발목이 잡혀 보급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풍력 발전소 확대 문제 등을 놓고 정부 부처 간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변 이사장은 "태양광이나 풍력 확대도 중요하지만 일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바이오나 폐기물 사업에서 규제를 확 풀어 이 분야를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국내 신재생 확대도 중요하지만 신재생 플랜트나 에너지 수요관리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도 제시했다. 그는 "최근 세계은행과 함께 전기사정이 열악한 과테말라에서 에너지 효율 개선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가 그간 추진했던 신재생이나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의 노하우를 갖고 개발도상국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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