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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에 치여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에게 연극 무대는 해학과 즐거움을, 또 때로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제시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고전을 각색해 이상국가, 인간, 혁명 등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며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해주는 연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혼란 통해 현대를 비추다=고대 그리스 희극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기원전 385?)의 대표작 '새'가 11월 3일까지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오른다. 현실에 대한 뚜렷한 비판 의식을 담아 화제를 불러 모았던 전편 '개구리'와 '구름'에 이은 세 번째 작품으로, 윤조병 작가가 각색한 희곡을 그의 아들인 윤시중 연출가가 무대에 올렸다. 복잡하고 떠들썩한 현실을 벗어나 이상 세계를 꿈꾸는 인간들이 새의 나라를 찾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다. 스파르타와의 오랜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 시민들은 지쳐 있었으며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세의 고민, 현대에 해답을 주다=13세기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대서사시 '신곡'이 국내 최초로 연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국립극장이 '국가 브랜드 프로젝트 공연'으로 1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오는 11월 2~9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연출가 한태숙과 고연옥 작가, 배우 박정자와 정동환, 지현준 등이 뭉쳐 단테가 인류에 던진 인간에 대한 화두를 무대 위에 구현한다. 단테의 '신곡'은 35세의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은 100편의 시, 1만 4,233행으로 구성돼 있다. 평생을 사랑한 여인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그는 연옥과 지옥을 거쳐가면서 인간의 한계를 목격한다. 7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현대인에게 깊은 공감대를 선사하는 수작이다.
◇근대의 화두, 현대 무대로 끌어내다=예술의전당은 독일의 대문호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오는 11월 3~17일까지 '당통의 죽음'을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은 24살의 나이로 요절한 뷔히너가 1835년 독일 민중의 혁명에 참여하다 도주 과정에 필요한 여비를 조달하기 위해 썼다. 프랑스 대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수준을 넘어 혁명 이후 핵심 지도자들에게 나타난 심리적 혼란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판소리 소리꾼 이자람이 거리극 장면에서 1인 다역을 연기하는 광대로 출연해 주목을 끌고 있다. 혁명이 가져온 잔혹한 살육과 공포정치에 회의를 갖고 술과 여자로 공허함을 채우려는 당통은 배우 박지일이, 점점 더 피의 맛에 빠져드는 로베스피에르는 배우 윤상화가 연기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 '바냐 아저씨'는 오는 11월 2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선보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 체호프의 희곡 가운데 정수로 여겨지는 유명한 작품이다. 주인공 바냐를 비롯한 등장 인물들은 인간의 상실과 괴로움, 열망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투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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