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진 등이 회사나 주주를 '배신'해 이들의 이익을 해치는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형법의 기본 이념은 고의범을 처벌하는 것인데 배임죄의 경우 고의성 여부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고의인지 과실인지 불분명해도 처벌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탓에 국내 20대 그룹 대기업 총수 가운데 6명은 이른바 배임죄로 형사처벌된 전력이 있으며 일반 형법상 배임죄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지난 2013년 기준으로 1,780명에 이른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의적으로 회사 또는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는 사기·횡령죄 등을 적용하면 되고 과실인 경우는 민사 절차를 통해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경영 실패를 무분별하게 배임죄로 단죄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부분의 국가는 배임을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 보고 있으며 배임을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 독일·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배임을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반한 경우'로 고의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
물론 사법당국은 배임죄를 판단할 때 '경영판단의 원칙'을 고려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단순 과실범은 걸러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관되지 않은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승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대법원 재판연구관)는 '배임죄 판례 분석을 통한 경영자의 배임죄 적용에 있어 이사의 적정 주의 의무 수준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경영판단의 원칙이 적절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다"며 "과실에 대해서도 배임죄가 광범위하게 적용돼 기업의 경영판단을 위축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국회부의장)이 배임 적용요건에 고의성을 명시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이유다.
정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단순 과실에 의한 경영 실패는 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살리기' 차원에서 일부 계열사를 집중 지원하다가 손해를 본 경우가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배임죄가 완화되면 기업인의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존중하는 계기가 돼 투자활동을 촉진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임죄 완화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아 개정안이 실제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경영 실패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이 활성화돼 있지 않고 배상액 규모도 적은 우리나라 상황상 배임죄 완화는 이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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