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시 주석은 공개석상에서는 개별 국가에 대한 언급을 철저하게 회피했다.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라는 말로 중국의 새로운 대국외교를 강조할 뿐 속내를 감췄다. 물론 비공개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중동문제 등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겠지만 중국은 국가이익을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들기며 미ㆍ중 간의 공동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위기 출구전략은 동의=케리 장관의 방중 결과는 한반도 위기 상황의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중국도 동의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화 제의라는 한국과 미ㆍ중의 암묵적인 합의 메시지를 북한이 사실상 거부한 만큼 어떤 수준의 구체적인 압박이 취해질지가 다시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경제원조라는 가장 강력한 압박수단을 가진 중국이 실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중국 최고지도부와의 만남에서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욱 단호한 행동을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 유지 ▦대화로 문제 해결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회담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정세를 매우 중시하며 이 같은 중국의 입장은 시종일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MD 체제까지 양보하나=중국의 구체적인 행동을 위해 미국이 얼마나 양보할까에 외신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는 중국의 입맛에 맞는 무언가를 주고 한반도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케리 장관이 중국이 북핵 프로그램을 폐지하도록 하면 미사일방어망(MD)를 축소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의 위협으로 한반도 위기상황이 고조되며 동아시아에 배치한 미사일 방어망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북한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에 나서라는 제안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아직 어떤 조치를 취할지 답을 주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미사일 방어망 배치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는 중국 입장에서는 꽤 괜찮은 조건일 수도 있다
◇북한 도발은 제발 찍기=시 주석이 북한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지만 리커창 총리는 직접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케리 장관을 만난 리 총리는 "한반도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국 모두 손해"라며 "자기 발을 돌로 내리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리 총리의 이 같은 말은 북한의 도발 자체가 북한을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라는 의미로 외신들은 해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북ㆍ중 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며 김정은이 중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면서 중국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최고지도부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언론도 관례를 깨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13일 케리 장관 방문 사설에서 "중국의 인내가 한계에 봉착했다"며 "평양의 행동이 중국의 이익에 대치될 경우 제멋대로 하게 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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