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런던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전날보다 1.55% 하락한 1.2944달러를 기록해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3달러가 단숨에 무너졌다. 이는 1년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폭은 2011년 11월 이후 가장 컸다. UBS의 사이먼 스마일스 웰스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경제전문 매체 CNBC에서 ECB의 통화완화 조치로 유로화가 큰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유로 약세를 이끄는 꿀 한숟갈 정도가 아니라 항아리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유럽 증시는 6년6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FTSE 유로퍼스트300지수는 전일 대비 1.12% 상승하며 1,400.99로 마감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주요국 국채금리도 일제히 떨어졌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일 2.456%에서 2.347%로 하락했으며 스페인과 프랑스 국채금리 역시 0.1%포인트씩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국채매입을 제외하고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쓴 ECB의 경기부양 조치로 최소 7,000억유로가 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ECB의 주요 매입 대상인 자산유동화증권(ABS) 규모와 관련해 "유통물량이 부족해 유로국 정부가 보증하면 ECB가 더 위험한 자산도 사들일 수 있음을 드라기는 강력히 시사했다"고 블룸버그 등은 분석했다.
다만 ECB의 부양책이 얼마나 뒷심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앞선다. 일회성 '깜짝 쇼'에 그칠 경우 충분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드라기가 마침내 행동에 나섰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ECB의 정책 지속성에 대해 시장은 미덥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NYT는 "ECB가 인플레이션 목표(2%)를 달성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책을 유지할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확신이 없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드라기가 마침내 반격에 나섰지만 유로 경제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이번 조치가 수요(인플레이션 제고)를 충분히 부추길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산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는 시중금리를 낮추는 데 목적이 있지만 이미 기준금리가 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ECB에 대한 독일의 견제도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는 이번 ECB의 추가 조치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기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집권 기민당의 미하엘 푹스 원내 부대표는 "ECB의 조치가 유로 경제 회생에 필수적인 개혁에 대한 압박을 희석시키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BK애셋매니지먼트의 보리스 실로스버그 이사는 CNBC방송의 '퓨처스 나우'에 출연해 "ECB 부양책에 대한 독일의 우려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며 이번 조치로 EU 내에서 파열음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향후 독일의 반대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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