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데스크 칼럼] 코끼리 옮기기


연금과 코끼리의 공통점은?

다소 엉뚱한 질문 같지만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둘 다 덩치가 아주 크다. 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에다 몸이 육중한 관계로 움직이기도 힘들다. 이는 칼 힌리히스 독일 브레멘대 교수가 연금과 코끼리의 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연금 개혁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연금에는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세력들이 있어서 연금을 개혁한다는 것은 덩치 큰 코끼리를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코끼리 옮기기 작업이 시작된 느낌이다. 공직사회와 군대 개혁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사학연금 등 3대 직역연금제도의 개혁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 사실 국가의 재정부담을 감안하면 공적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공무원연금만 하더라도 적립금이 고갈되면서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 보전금이 지난해 1조9,000억원에서 올해 2조4,854억원, 오는 2023년에는 8조5,801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쫓기듯 공적연금 수술 성공 어려워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는 최근 들어 공적연금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1월부터 공무원연금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2월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에서 3대 연금제도 개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여당도 관련 개혁 법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재정 부담을 감안할 때 공적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국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개혁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공적연금 개혁은 어제오늘의 이슈는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왜 그럴까. 정권의 의지가 약한 탓도 있지만 추진방식이 잘못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공무원연금제도 개혁에 나섰지만 위원회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공무원 단체 대표들을 과반수나 포진시키는 바람에 기존 공무원의 연금 지급 연령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다.



공적연금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무난히 옮기려면 2002년 영국 신노동당의 2차 연금개혁 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는 2기 집권에 성공한 직후 노후보장 문제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연금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에서 가장 역점을 뒀던 부분은 방대하고 꼼꼼한 기초자료 구축이었다. 위원회는 연금의 현 상황 분석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확실한 기초자료를 만들었다. 영국 노동연금부는 연금위원회가 4년여의 노력 끝에 내놓은 백서를 바탕으로 광범위한 여론청취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영국 정부는 1차적으로는 재계와 노동계 등 이해당사자들과 수차례의 공식·비공식 협의를 거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뒤 최종적으로는 일반 국민들과 공적인 협의에 나섰다. 국민들은 이 과정에서 연금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게 됐고 노후대비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과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를 통해 연금위원회가 내놓은 안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데 주요 정당들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된 연금제도는 2010년 노동당에서 보수-자유민주 연립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그 틀이 그대로 유지됐다.

영국의 사례는 연금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최근 세월호 참사에 이은 관피아 논란과 군대 내 폭행사건 등으로 공직사회와 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당정청은 공적연금 개혁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이해당사자 설득 위한 작업 필요

하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단숨에 모든 것을 해치우겠다는 방식으로는 연금 개혁에 성공하기가 어렵다. 공적연금 개혁이 과거처럼 흐지부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적연금과 관련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초자료를 만들고 이것을 토대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작업 없이 어설프게 개혁에 나섰다가 과거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csoh@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