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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구도 깨고 '능동적 외교' 터 닦았다
한중일·한미 회담서 북핵 해법 등 주도권 확보
G2 사이 '새우외교' 아닌 전략적 활용 틀 마련
3일 개최된 중국의 '항일(抗日)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참석한 각국 정상과 국빈들의 자리배치 구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 박 대통령의 자리는 성루에서 광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 주석의 오른편 두 번째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이었다. 즉 시 주석의 오른쪽으로 푸틴 대통령, 박 대통령 순이었다. 시 주석의 왼편은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 순으로 역대 중국 지도부가 자리 잡았다. 중국 입장에서 외빈만 보면 시 주석 오른편의 순서가 중국이 생각하는 외교적 중요도 평가 순서인 셈이다.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는 오른쪽 끝에 떨어져 배치됐다. 중국이 한국과 북한의 외교적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중앙에 위치한 것은 중국이 우리 외교의 국제적 위상을 재평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박 대통령이 동북아 외교지형에서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인 행보를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북아 외교의 주도적 행보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박 대통령의 높아진 외교 위상=중국은 이번 전승절 행사 자리배치를 포함해 방문 기간 내내 박 대통령을 '특급 대우'했다. 한때 혈맹관계였던 북한의 최 비서는 이번 중국 방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중국 외교정책의 '방향추'가 북한에서 한국으로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주석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혈맹이었던 북한의 손을 서서히 놓으면서 경제적 유대가 더욱 돈독해지고 있는 한국의 손을 더욱 끌어당기는 외교지형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이 이번에 참모진에게 "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손님 중 한 분"이라며 "잘 모시라"고 특별 지시한 것은 이 같은 위상변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시 주석이 이처럼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무력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국제사회가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북한을 껴안는 것은 '외교적 실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중국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한미일의 반중동맹을 깬다는 의미가 있다. 또 경제 분야에서는 양국의 시너지 효과를 높여 시 주석이 표방하는 '대국굴기(큰 나라로 우뚝 섬)'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대통령, 동북아 외교 주도권 확보=박 대통령은 이번 전승절 참석에 대한 주변국들의 높은 관심과 평가, 그리고 확고해진 외교위상을 발판으로 동북아 외교지형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단적인 예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중일 정상회담의 한국 개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정상들이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면서 한국이 중국에 경도(傾倒)됐다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즉 동북아에 드리워진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구도를 깨뜨리면서 한중일 3국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동번영, 발전을 위해 한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구축하는 박 대통령의 능동적 외교 패러다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하고 내년 미국 대선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 내 정치 이슈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 핵과 한반도 안보 이슈에 대해 앞으로 주도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치이는 '새우 외교'의 틀을 깨고 오히려 미국과 중국을 우리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활용하는 새로운 외교의 틀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G2 활용한 적극 외교 전개 전망=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과 열병식 참석에 이어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16일 오바마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한다.
이번 중국 방문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들고 갈 '선물'도 푸짐하게 챙겼다. 시 주석으로부터 북한 핵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 무력도발 등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받아냈다. 미국이 듣고 싶어하던 부분이다.
또 한중일 3자 정상회담을 오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개최하기로 했다. 당초 시 주석은 영토분쟁·역사왜곡 등을 이유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박 대통령이 동북아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시 주석을 설득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동북아 안보를 공고히 하기를 원했던 미국으로서는 큰 선물을 얻은 셈이다.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서 확보한 '외교 근육'을 바탕으로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 등 하반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양자회담과 다자외교를 통해 한반도 및 동북아 외교 이슈에 대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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