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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는 한국 땅이었다”


“간도는 한국 땅이었다”
대한제국 1902년 러시아와 공동통치협약안 작성

조상인기자ccsi@sed.co.kr


















1902년 대한제국과 러시아가 간도(間島) 지역에 대한 공동 통치를 규정하는 특별 협약안을 작성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 같은 내용은 러시아의 동방학자 H.B.뀨네르(1877~1955)의 저서 ‘한국개관’에 명시돼 있으며 동북아역사재단은 발간된 지 100년이 된 이 책을 최근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이 책에서 큐네르는 1908년 중국의 혁명가 쑹자오런(宋敎仁ㆍ1882~1913)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간도문제(間島問題)’라는 책을 인용해 “러시아 정부는 한국에 파견된 자국의 공사 베베르를 통해 이 문제(간도 문제)에서 한국 정부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간도 지역에 대한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통치를 규정하는 특별 협약안이 1902년 이미 양국 정부 간에 작성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러시아가 1902년 당시 대한제국과 간도 지역에 대한 공동 통치 협약안을 작성했다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간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특히 1902년 무렵은 대한제국이 간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범윤을 간도시찰사로 파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동북아역사재단 김영수 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청나라와 일본을 배제하고 한국과 간도를 공동 통치하려 했다는 것은 한국의 간도 영유권을 인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뀨네르는 간도 영유권 분쟁의 불씨가 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土門)’에 관한 조선과 청나라 간 해석 논쟁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명했다. 조선과 청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압록강과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西爲鴨綠 東爲土門)’고 합의했으나 중국 측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해왔으며 조선은 송화강 지류라고 맞서왔다. 뀨네르는 토문강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한국 측의 논리가 더 타당하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김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뀨네르는 레닌그라드대(현 상트 페테르부르크대학) 교수 등을 지낸 저명한 학자로,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조선의 경제적 변화상과 지리 정보를 집대성한 저서 ‘한국개관’을 1912년에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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