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오판과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양자에는 도제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시각으로 히틀러의 판단 착오를 살펴보자. ‘히틀러는 미국이 참전할 시간이 없다고 봤다. 정밀무기를 생산할 숙련공 육성에 소요될 3~4년 안에 유럽 정복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오산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럴 만했다. 보르지히(August Borsigㆍ1804.6.23~1854.7.6)가 창안한 기업 도제제도 덕분에 세계 최고의 산업기술력을 자랑했으니까. 보르지히는 증기기관차 국산화와 품질개선에 매진한 인물. 영국보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 아래 기업 도제제도를 1840년에 고안한 사람이다. 수백개로 분열된 크고 작은 나라에서 살아 남은 중세식 길드조직이 기계화와 산업화에 저항하던 상황에서 보르지히는 길드의 장인들을 공장에 끌어들여 이중직업교육(dual system)이라는 독특한 제도로 발전시켰다. 낮에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밤에는 공장에서 장인들에게 현장경험을 전수받은 직공들은 3~4년 만에 숙련공으로 자리잡았다. 애덤 스미스가 분석한 숙련공 양성기간 50~100년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기능인력을 배출하는 보르지히시스템은 독일 전역으로 퍼졌다. 전쟁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미국이 독일을 누르고 승리한 원동력은 테일러의 과업연구 이론에 의거한 분업과 대량생산. 농부를 30~60일의 교육으로 반숙련공으로 변모시켜 전쟁무기를 양산해 끝내 이겼다. 오늘날 상황은 뒤바뀌었다. 도제제도 아래 생산되는 독일산 초우량제품은 세계를 지배한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경쟁력 향상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독일 도제제도 도입을 추진한 적도 있다. 총칼이 못 넘은 벽을 직업훈련과 경제로 극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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