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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주주 없는 주주총회

증권부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co.kr

14일 110여개가 넘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동시에 열렸다. 이른바 슈퍼주총데이다. 그런데 슈퍼주총데이가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름대로라면 많은 상장사의 주총이 몰린 이 날은 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주주들의 축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날 주주들이 설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우선 소액주주를 위한 배려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매년 지적되는 문제지만 올해도 대부분의 기업이 한날한시에 주총을 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대 그룹 중 12월 결산법인인 상장사 35곳 중 31곳이 이날 주총을 열었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의 주인공 도 매니저라면 모를까 웬만한 일반인들의 능력으로는 한날한시에 열리는 주총장을 다 참석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주를 남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의 인식도 여전하다. 주총의 주요 안건에 대해 소액주주는 물론이고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의 의견도 무시되기 십상이다. 만도는 지난 7일 주총에서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13.41%)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사현 대표의 이사 재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이외에도 올해 주요 기업이 사외이사 후보로 올린 인물들을 살펴보면 과거 배임행위 이력이 있거나, 대주주와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혀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됐다. 기업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주주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인물들이지만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나눔(배당)에도 인색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산규모 기준 주요 10대 기업집단 소속 상장사 중 유보율 상위 20개사의 최근 3년간 유보율은 2,861% 증가했지만 유가증권시장 내 시가총액 1조원 초과 대기업의 최근 3년간 평균 시가배당률은 1.45%에 불과했다.

며칠 전 기자가 만난 한 연구원은 이처럼 주주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날 주총의 풍경을 외국인 투자가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주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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