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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기자의 술술-미술] '잘 나가는' 작가

스위스 바젤 소재 바이엘러미술관이 기획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전

"제일 잘 나가는 작가가 누구입니까?"

독일 출신의 게르하르트 리히터(82)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미술가다. 세계적 권위와 영향력을 갖는 아트넷(Artnet)이 지난 2011년 초부터 2014년 8월까지 3년 반 동안의 경매 결과를 분석해 최근 발표한 '생존작가 톱 100'에 리히터가 1위로 이름을 올렸다. 조사기간의 낙찰총액은 약 8억5,889만 달러로, 약 9,151억원어치가 팔린 결과다.

미술은 물론 미술시장에 관심이 있다면 리히터 정도는 꼭 알아야 한다. 프랑스에 기반을 둔 세계적 미술전문지 아트프라이스가 매년 발표하는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리히터는 생존작가로는 유일하게 10위 내에 이름을 올려 피카소와 모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랜시스 베이컨, 장다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난 2012년 10월 런던 소더비경매에서는 영국 팝스타 에릭 클랩톤이 소장했던 그의 추상화가 2,132만 파운드(당시 환율 약 380억원)에 팔렸다. 그때까지 세계 경매사상 생존작가 작품이 그렇게 비싸게 팔린 적은 없었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기간에 인근 바이엘러미술관에서는 대규모로 리히터의 회고전을 열었다. 안목과 영향력 탁월한 이 미술관이 회고전을 기획한 제프 쿤스, 바스키아, 자코메티 등은 이후 어김없이 '최고가 기록경신'을 터뜨렸다.

동독 출신으로 통일 직전 서독으로 망명한 리히터는 초기작에서는 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리는 '포토 리얼리즘'을 자주 선보였으나 이후 초점이 나간 듯 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림을 그리다 나중에는 아예 대상을 사정없이 뭉개뜨려 색의 흔적만 남은 추상회화로 표현했다.



혹자는 '나도 그리겠다'고 하는 리히터의 그림이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사진과 회화, 단색과 채색,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채롭게 넘나들었다. "어떤 목표도, 체계도, 경향도, 양식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그의 예술세계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즘'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 이것이 바로 리히터의 그림이 고가에 거래되는 '미술사적 가치'다.

리히터 때문에 2위를 차지했지만 못지않게 '잘 나가는' 작가는 제프 쿤스(59)다. 팝아트 계열로 분류되는 작가지만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도 탁월한 인물이다. 작년 한 해만 경매에서 1,572억원어치를 팔아치웠고, 지난해 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대표작 '풍선 개'가 5,840만달러(약 621억원)에 팔려 리히터를 누르고 생존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에 지난 4년간 경매에서 거래된 생존작가 '작품당' 거래액 순위를 보면 쿤스가 1위를 비롯해 4, 5, 10위를 차지했고 리히터는 2, 3위와 6~9위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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