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정치적 제재를 검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러시아에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까지 급락했고 3일 주가는 10% 폭락하며 출발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5%포인트 전격 인상해 환 방어에 나섰다.
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장중 36.9루블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날 러시아 종합주가지수 격인 MICEX 지수는 장 시작과 동시에 약 10%나 폭락했다. 이날 러시아 중앙은행은 급락하는 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5.5%에서 7%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이 같은 금융혼란은 2일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추가 파병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짐으로써 야기됐다. 이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CBS·ABC·NBC 등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러시아를 제외한 주요8개국(G8) 국가들이 경제·정치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비자발급 중단과 러시아 관료·기업인의 자산동결, 투자·무역 관련 제재를 시사했으며 "이번 사태가 완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러시아를 G8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케리 장관은 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해 야권 성향의 과도정부를 공식 지지하기로 했다. 이외에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유럽연합(EU)도 긴급회의를 잇따라 열어 러시아를 비판하는 공식 성명을 내놓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전세계 금융시장도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터키 리라화 가치가 달러 대비 1.2% 급락했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즐로티화와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도 각각 0.79%, 0.62% 떨어지며 금융혼란이 인접국으로까지 전염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의 코스피지수가 0.77% 하락한 1,964.69로 장을 마쳤으며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27%나 하락했다. 홍콩·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의 주가도 1% 내외의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천연가스 가격은 장중 2.5%나 급등했다. 북해산브렌트유 가격도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1.2% 상승했으며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금 현물 가격도 1.2% 올랐다.
에델바이스금융서비스의 암바레시 발리가 투자전략가는 "누구도 세계 2대 슈퍼파워(미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며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까지 투자자들은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핵 항공모함을 지중해에 머물게 하고 향후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는 설이 퍼지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2일 미 해군에 따르면 최근 버지니아주 노포크를 출항한 조지HW부시(CVN-77) 핵 항모는 당초 아라비아해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지중해에 머물고 있다. 다만 2일 러시아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해결을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이끄는 진상조사기구 및 연락기구를 설치하는 제안을 수용했다"고 밝혀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될 여지도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상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