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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HEU 핵연료의 종말


지난달 26~27일 개최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국ㆍ미국ㆍ프랑스ㆍ벨기에 4개국은 일부 고성능 연구용 원자로에서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HEU) 핵연료를 저농축 우라늄(LEU) 핵연료로 전환하기 위한 공동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HEU를 보유하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우리나라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HEU 연료를 고밀도 LEU 연료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인 원심분무 핵연료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발 대체 핵연료 실용화 눈앞

4개국 공동 프로그램은 미국이 제공한 우라늄으로 한국이 핵연료 분말을 제조하고 프랑스가 이를 핵연료로 만들어 자국과 벨기에 연구로에서 성능을 검증, 성공적이면 향후 전세계 모든 연구로(爐)의 핵연료를 LEU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원심분무 기술은 비 오는 날 우산을 돌리면 원심력에 의해 빗방울이 우산 주위로 퍼져 나가는 것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이 기술의 핵심은 우라늄과 금속 혼합물을 진공 상태에서 섭씨 1,600도가 넘는 고온으로 녹인 뒤 분당 3만번 이상 회전하는 작은 원판 위에 떨어뜨림으로써 원심력에 의해 미세한 구형 분말 형태로 급속히 응고시키는 것. 재료 분야에서 알려진 기술이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원연)은 이를 우라늄 금속에 적용하기 위해 고온에서의 우라늄 진공용해, 도가니 설계, 고속회전 디스크 기술 등을 확보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 연구로 핵연료 분말은 우라늄과 금속 화합물을 녹여 무게추 모양의 거푸집에 부어 식힌 뒤 절구나 기계로 깨는 파쇄 방법으로 만들었다. 원연은 지난 1987년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는 파쇄분말법의 단점을 극복하고 합금 원료에서 바로 분말을 제조할 수 있는 원심분무 기술 개발에 착수, 1991년 경제성과 핵연료 성능이 우수한 원심분무 우라늄-실리콘 합금 분말 제조에 성공했다. 기술 개발 결과를 국제회의에서 처음 발표할 때 각국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칠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원연은 이어 고성능 연구로에서 사용하는 HEU 핵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고밀도 LEU 핵연료인 우라늄-몰리브덴 합금 분말 제조기술도 개발했다. 우라늄-몰리브덴 합금은 우라늄-실리콘보다 밀도가 높지만 물러서 기존의 파쇄 방법으로는 분말화가 어려워 5㎏의 분말을 만드는데 1개월 이상 걸리고 수율도 50%를 밑돈다. 반면 원심분무 방법으로 제조하면 이틀 안에 고순도의 우라늄-몰리브덴 분말을 95% 이상의 수율로 생산할 수 있다. 이번 4개국 프로그램도 우라늄-몰리브덴 합금 분말로 핵연료를 제조하려는 것이다.



원연은 원천기술 개발 후 현 기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했다. 방사성 규제물질인 우라늄을 극한 조건에서 다루기 때문에 원심분무 작업은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보다 더한 4D의 작업환경이다.

우리 원천기술로 핵 비확산에 기여

연구원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묵묵히 기술 개발에 매달렸지만 한때 연구 지원이 중단돼 절반 이상이 다른 과제팀으로 떠나는 아픔과 기술 단절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원천기술의 명맥을 지켜내고 독보적 기술로 완성했다. 세계최대 연구로 핵연료 공급업체인 프랑스 아레바세르카(AREVA-CERCA)는 이미 원심분무 기술로 만든 분말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기술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고성능 연구로 20기에서 사용하는 연간 600㎏의 HEU는 핵폭탄 24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어서 테러단체 등에 넘어갈 경우 대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만 보유한 원심분무 기술이 HEU 사용을 줄여 글로벌 핵 비확산에 기여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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