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취재팀, 일본 무연사 실태 추적
미혼·저출산 등이 인연없는 사회 부추켜
30·40대 젊은층까지 외톨이 정서 확산
"사람·생명 염려할 수 있는 사회 돼야"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부제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지인이라 할 정도로 현대 사회가 소셜 네트워크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여 있다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인가. 평범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쓸쓸히 홀로 생(生)을 마감한다.
2009년 1월, 일본 시부야의 어느 선술집. 워킹 푸어 문제를 함께 취재했던 NHK의 기자와 PD는 세상사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성 PD가 이야기를 건넨다. "워킹 푸어 때 취재한 남자와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의지할 사람도 없이 어딘가에서 혼자 죽었는지도 모릅니다."이어 총감독이 말을 보탠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 인연이 없는 사회, 이를테면 '무연사회(無緣社會)'인 거네…."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사회와의 관계를 잃고 무연사(無緣死)하는 걸까. 가족과의 관계, 고향과의 관계, 회사와의 관계. 이런 인연이나 유대를 사는 동안 어떻게 잃었던 걸까. 그 궤적을 좇아가면 무연사를 만들어내는 사회 모습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의문에 천착한 NHK 취재팀은 국가 발행 관보에 게재되는 '행려사망자'의 기사를 단서로 단 몇 줄로 정리된 숱한 인생들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연간 3만2,000여 명의 무연사. 취재팀은 죽은 자의 대부분이 신원이 밝혀져 가족이 있는데도 거두지 않는다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피를 나눈 가족이나 친족이 있는데도 왜 거두지 않아 무주고혼이 되는 걸까. 취재팀은 독신화, 미혼, 저출산이라는 가족의 형태 변화가 '무연사회'의 확대를 부추기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개인의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족 안전망, 그 근간이 흔들리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뢰로 가족을 대신해 유품을 정리해주는 특수청소업이라는 신종 비즈니스, 가족을 대신 해 사후 정리를 해줄 NPO(비영리시민단체)에는 고령자뿐 아니라 대기업을 갓 정년 퇴직한 남성이나 '나홀로' 여성까지 몰려들고 있다. 홀로 생의 마지막을 맞는 데 대한 불안이 생각 이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로 눈을 돌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NHK 특별 취재팀의 르포 방송'무연 사회'시리즈가 방영되자 인터넷에서는'무연사회, 남 일 아니네'라는 30,40대들의 공감의 댓글들이 잇따랐다. 방송은 50대와 60대 이상 노년층의 무연사를 다뤘지만 실은 30,40대를 비롯한 전 세대에 '무연감'이라는 정서가 퍼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가 초래한 일본인의 인연을 잃은 죽음, 희박해진 혈연, 고용의 악화, 지역 사회의 인연의 상실 같은 것이 가족이라는 사회 최소 단위 자체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타인에게 흥미를 갖지 않는 사회가 확산되는 지금, 적어도 '사람 그리고 생명을 염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취재팀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는다.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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