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내 전문가가 진단한 내용이 아니다. 미국의 의결권 자문기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의 준 프랭크(Jun Frank)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슈퍼 주총데이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주총 쏠림 현상이 세계적으로 불명예스러운 현상이 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주총 쏠림 현상은 수년 전부터 문제점이 지적돼 왔음에도 매년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유가증권시장(코스피시장) 상장사 가운데 3월 둘째~넷째주 금요일,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에 주주총회를 연 곳은 2011년 80.9%, 2012년 80.0%, 2013년 81.0%, 지난해 84.7%로 매년 80%를 넘었다. 특히 지난해 3월 21일에는 무려 662개의 상장사들이 한꺼번에 주총을 열었다. 올해에도 지난 13일까지 주총 일정을 공시한 코스피시장 상장사 117개 가운데 93개(79.5%)가 3월 13일과 20일, 27일에 주총을 열기로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왜 이런 주총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핵심적인 원인은 기업들이 주주들의 관심을 분산시켜 주총에서 주요 안건을 쉽게 통과시키기 위한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재혁 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실과장은 "결산일 이후 90일 안에 주총을 열도록 한 상법의 기준일 제도와 과도한 결산·공시 업무 등 때문에 주총이 3월 말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금요일'에 몰리는 이유는 (주총 의결을 쉽기 하기 위한)관행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주말 직전에 주총을 열면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비교적 덜 받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 등에서 금요일 개최를 선호해 왔다는 것이다.
법무부도 수년 전부터 주주들의 정당한 의결권 행사를 가로막는 주총 쏠림 현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장사협의회 등을 통해 개선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올해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자 본격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주총 쏠림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은 대만의 경우처럼 하루에 개최 가능한 주주총회 개수를 제한하는 방안"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부담을 덜 주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 거론되는 방안이 '자율규제기관'을 통한 주총 분산이다. 같은 주총 개최 제한 규정이라도 위반 시 직접적인 제재가 따르는 법이 아니라 자율규제기관 내부 지침 등으로 명시하면 기업의 큰 반발 없이 주총 분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나 금융투자협회 등 기업 관련 단체들이 자율규제기능을 담당하면 기업에 부담을 덜 주면서 현장의 목소리도 반영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법무부는 기업들이 주총 분산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해 오면 적극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 방안으로는 각종 결산·공시 업무 완화, 기업 결산기일과 의결권·배당기준일을 분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